토라나
토라나 torana(범)
불교 스투파*의 사방에 나 있는 문으로, 원래는 나무 또는 대나무로 된 기둥을 양쪽에 세우고 그 위쪽에 긴 나무를 가로 방향으로 연결한 형식이었다. 이것이 산치*나 바르후트*에서 볼 수 있듯이 세 개의 인방을 올린 정교한 형식으로 발달하였다.
→ ‘스투파’ 참조
토라나 torana(범)
불교 스투파*의 사방에 나 있는 문으로, 원래는 나무 또는 대나무로 된 기둥을 양쪽에 세우고 그 위쪽에 긴 나무를 가로 방향으로 연결한 형식이었다. 이것이 산치*나 바르후트*에서 볼 수 있듯이 세 개의 인방을 올린 정교한 형식으로 발달하였다.
→ ‘스투파’ 참조
토로스 tholos(이)
그리스*, 로마*의 건축 양식. 횡혈식(橫穴式) 석실분(石室墳). 제실(祭室)이 궁륭* 천장으로 되어 있는 원형 건축을 말한다. 특히 그리스의 미케네* 문화 후기에 속한 것이 유명하다. 이런 고분의 원형으로 추측되는 것은, 크레타( →‘에게 미술’ 참조)의 프라타노스나 메사라 지방의 원형 가옥을 모방한 초기 미노아 시대의 군장묘(群葬墓)이다. 미케네 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예는 미케네의 <아트레우스의 보고(寶庫)>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보고> 등이며, 그리스의 원형 신전도 토로스라고 부른다.
토르소 torso(이)
본래는 이탈리아어로 ‘몸통’이라는 뜻이다. 머리와 팔, 다리 등이 없는 몸통 조각*을 독립된 의미를 지닌 완전한 작품으로 생각하고, 이것을 토르소라 부르게 된 것은 19세기 이후부터였다. 그리스*, 로마*의 유적에서 발굴된 동체(胴體) 조상(彫像)에서 독자적인 미를 인정한 로댕Auguste Rodin(1840~1917) 이후 근대의 조각가는, 인체의 미를 순수화하기 위한 생략으로서 토르소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찾아내었다.
톤 tone(영)
색조(色調). 본래는 음악 용어로 어떤 일정한 결합 관계를 가진 몇 개의 음이 융합되어 만드는 음조를 말한다. 회화에서는 개개의 색채가 명암*, 농담의 차이에 따라 형성하는 조화*를 말한다.
톤도 tondo(이)
원래는 이탈리아어로 ‘둥글다’는 뜻으로서 원형의 회화나 원형의 부조*를 말한다. 고대부터 있었으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 등에서 그 예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중세 말기부터 15~16세기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에서 유행하였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1564)의 <톤도 도니>, 라파엘로Raffaello Sanzio(1483~1520)의 <의자의 성모자>가 있으며, 19세기에는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1780~1867)의 <터키탕>이 유명하다. 톤도는 20세기 셰이프트 캔버스*의 원형으로 간주되고 있다.
→ ‘셰이프트 캔버스’ 참조
통일 統一 unity(영)
여러 요소, 소재* 또는 여러 조건을 선택하고 정리하여 하나의 완성체로 간추리는 것을 ‘통일한다’고 한다. 즉 완성 전의 여러 요소에는 서로 무관한 것, 서로 제약하는 것, 서로 반대하는 것 등이 있지만, 이것들을 모순 없이 관련짓고 하나의 전체로 결합하는 일을 말한다. 예술 작품에 있어서는, 작자의 개성이 통일의 주체가 되며 따라서 작품에 그 개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실용 목적을 갖는 제품이나 포스터* 따위의 작품에 있어서는, 디자이너의 개성만이 통일의 주체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통일신라시대 미술 統一新羅時代美術
신라는 삼국시대 이래 경주에 도읍을 정하고 660년 나당(羅唐) 연합으로 백제를 멸망시키고 또 668년에는 고구려를 병합한 뒤 당군(唐軍)을 몰아냄으로써 한반도를 통일시켰다. 통일신라는 당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건축:불교사원은 주로 평지에 세웠고, 가람*배치는 경주의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 〈불국사佛國寺〉 〈감은사感恩寺〉와 같이 쌍탑식이다. 탑*은 대부분 석탑이며, 경상북도 의성疑城 탑리塔里의 오층탑을 거쳐, 〈감은사 삼층탑〉(682), 〈불국사 석가탑〉과 같은 전형적인 석가탑(釋迦塔)이 되었다.
9세기의 석탑은 섬세하고 장식적이며, 불상*이나 십이지상이 부조*된 예가 많고, 경상남도 〈산청山淸 범학리泛鶴里의 삼층석탑〉, 전라남도 〈구례求禮 화엄사華嚴寺의 사사삼층탑四獅三層塔〉 등이 있다. 그외 경상북도 안동지방에는 전탑이 많고, 벽돌로 처마를 받치는 형식이 특징이다. 고승의 묘로 팔각당식의 석조 부도*도 많고,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예로는 〈흥법국사염거화상탑興法國師廉居和尙塔〉(844)이 있다.
고분:고분의 형식은, 고구려 . 백제계의 횡혈식 석실분으로 연도(椽道)를 설치하여 추장(追葬)이 될 수 있게 하였다.
조각:불상조각은 당의 영향을 받았으나, 한편에서는 신라 특유의 양식도 나타나기 시작, 8세기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양식이 전개되었다.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 출토의 〈녹유전상綠釉傳像〉, 경상북도 〈군위삼존불〉 등은 7세기 후반기의 강한 사실성과 생경함이 남아 있으나, 〈감산사甘山寺 석불>(719), 〈경주 굴불사堀佛寺 석불〉(8세기 전반)에서는 신라양식이 엿보인다.
이 신라양식은 8세기 석굴암石窟菴의 불상들에서 정점에 달한다. 그러나 9세기에는 조각도 쇠퇴하기 시작하여 석불은 머리나 어깨가 위축된 모습이다. 이 시기의 것으로 전라남도 장흥군 보림사寶林寺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座像〉(858), 강원도 철원군 도피안사到彼岸寺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865) 등이 있다.
공예:불교문화에 따라 화장(火葬)이 시행되어 부장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공예품은 거의가 불교 유물이다. 범종은 정상에 용*(龍) 모양의 축과 중공(中空)의 용*(甬)이 붙고, 종신은 상부에는 사구(四區)의 유곽(乳郭), 몸통부 동좌에는 비천*이 배치됐다. 토기는 골호(骨壺)가 많이 남아있는데, 고신라의 토기와는 달리 높은 대가 붙고 시유(施釉)토기도 나타난다.
회화: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제각기 성격을 달리하는 화풍이 서로 통합되고 조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에 활약했던 화가들로 솔거率居, 정화靖和, 홍계弘繼, 김충의金忠義 등이 있다. 솔거는 경주 황룡사皇龍寺 노송(老松), 분황사芬皇寺의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 진주 단속사斷俗寺의 유마상(維摩像)을 그렸다고 전해지나 작품은 남아 있지 않다.
그가 그린 황룡사의 노송에는 새들이 날아들다 떨어지곤 하였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로 판단해 보면, 청록산수*계통의 채색화에 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화와 홍계는 흥륜사興輪寺의 벽에 보현보살상(普賢菩薩像)을 그렸던 승려화가이다. 또한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 따르면, 김충의는 당唐에서 활약하였던 장군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1977년에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大方廣佛華嚴經變相圖〉가 발견되어 8세기 중엽의 불교회화 화풍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변상도에 그려진 불보살들은 석굴암의 조각상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고 유연하며, 정확하고 정교한 곡선으로 호화롭고 미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통형천정 筒形天井 barrel vault(영)
부벽(扶壁)과 지속적인 지지(支持)를 필요로 하는 반원통형의 둥근 천장.
퇴색 褪色 embu(프)
회화 기법 중의 하나. 외기나 광선을 쏘이면 모든 색깔은 바랜다. 또 제작 중에는 흑색, 갈색, 암녹색 계통의 색이 윤기를 잃는 일이 많다. 이를 퇴색이라 하며 베르니 아 르투시(Verni à retouche)를 분무하여 회복시킨다. 퇴색의 정도는 변퇴색 그레이 스케일을 써서 측정한다. 그러나 천연 광물을 원료로 하여 만든 물감 종류는 쉽사리 퇴색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