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왕오운
사왕오운 四王吳惲
청초(淸初)의 산수화가 왕시민王時敏(우앙 스민, 1592~1680), 왕감王鑑(우앙 지엔, 1598~1677), 왕휘王絮(우앙 후에이, 1632~1717), 왕원기王原祁(우앙 위앤치, 1642~1715), 오역吳歷(우 리), 운수평惲壽平(윈 서우핑) 등 여섯 사람에 대한 총칭. 그들은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基昌(똥 치츠앙, 1555~1636) 후에 명성을 얻고 화단을 이끌면서 당시의 양식을 좌우했다.
사왕오운 四王吳惲
청초(淸初)의 산수화가 왕시민王時敏(우앙 스민, 1592~1680), 왕감王鑑(우앙 지엔, 1598~1677), 왕휘王絮(우앙 후에이, 1632~1717), 왕원기王原祁(우앙 위앤치, 1642~1715), 오역吳歷(우 리), 운수평惲壽平(윈 서우핑) 등 여섯 사람에 대한 총칭. 그들은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基昌(똥 치츠앙, 1555~1636) 후에 명성을 얻고 화단을 이끌면서 당시의 양식을 좌우했다.
사운드 아트 Sound Art(영)
시각 예술가들에 의해 제작되는 주로 소리로 구성되는 미술 작품. 시각이 아닌 청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예술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사운드 아트는 시각미술을 위한 장소 – 화랑, 미술관, 야외환경, 공공미술*과 퍼포먼스* 현장 등에서 전시되거나 카세트테이프 형식의 잡지로 발표된다. 시각미술의 영역에서 소리의 사용은 루솔로Luigi Russolo(1885~1947)가 1913년 미래주의* 선언문인 <소음의 미술The Art of Noise>에서 특이한 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통해 청중들에게 거리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부터 비롯되었다.
한편 미술과 음악이 결합된 형식인 사운드 아트에 개념미술*적인 요소가 나타나게 된 계기는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의 레디메이드* 작품 <비밀(숨겨진 소음과 함께)A Bruit Secret(With Hidden Noise)>(1916)에서 나사가 떨어진 것이 시초였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케이지John Cage는 뒤샹의 실험 정신을 계승하여 주위 환경의 소리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무음곡(無音曲)을 발표했다. 그의 작업은 음악, 시각미술 그리고 무대미술*의 전형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해프닝*과 플럭서스*의 이벤트에서도 소리가 이용되거나 음악이 연주되는 경우가 많다. 앤더슨Laurie Anderson은 연극적인 퍼포먼스에 팝 음악을 삽입하고, 에노Brion Eno는 섬세한 음질의 소리환경을 창조한다.
또한 몇몇 시각 미술가들은 보통의 무언의 미술작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소리를 사용해왔다. 예를 들어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1925~ )는 라디오를 그의 컴바인 페인팅* 작품인 <방송Broadcast>에 도입했으며, 모리스Robert Morris(1931~ )는 <소리 상자>(1961) 안에 3시간 분량의 녹음테이프를 넣어 미술 작품을 생산하는 과정의 소리를 녹음했다. 1960년대말 개념미술로부터 시작한 소리 조각은 다른 많은 개념미술 형태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에 가장 활발히 제작되었다. 노만Bruce Nauman(1941~ )과 질 스콧Jill Scott을 포함한 개념미술가들은 사운드 아트 작품을 제작하는 동시에 설치* 미술이나 비디오 아트* 등 다른 매체를 다루는 작업을 병행하였고, 홀리스Doug Hollis 같은 작가는 바람 등의 자연현상에 의해 음을 내는 야외 조각을 제작한다.
사의 寫意
①외형보다는 내재적인 정신이나 의취(意趣)를 표현하는 것. 동양화에 있어서 사실(寫實)을 의미하는 ‘형사(形似)’와 대조되는 용어이다. 송대(宋代)에 수묵화*가 극도로 발전하게 되면서 정립된 개념으로, 물상(物象)의 이치와 섭리를 터득하고 흉중구학*의 경지를 표출해 내는 것을 이른다. 송대의 문인 소식蘇軾(쑤 스, 1036~1101)은 “형사로만 그림을 논하면 식견이 아이들과 다름없다”고 말함으로써 형사보다 사의를 중요시했다. 즉 문인화가들은 회화 창작시 회화상에 사의가 내포되는 것을 매우 중요시했는데, 이러한 송대의 문인화*론(文人畵論) 전개 과정 속에서 사의는 중요한 개념으로 발전해 왔다. 한국의 문인화가들도 중국 문인화론의 영향 속에서 이러한 경지를 획득하는 것을 회화창작의 목표로 하였다.
②동양회화 기법 용어. 속칭 조필(粗筆)이라 하며 공필*과 대비되는 말이다. 조방한 필묵을 사용하여 간략하게 대상의 형상과 신운(神韻)을 그리는 화법을 이른다. ‘사(寫)’는 대상의 형체를 표출해 내는 것이고, ‘의(意)’는 객관대상의 정신과 본질을 담아내는 것이다. 나아가 작자의 문화소양과 정신기질을 표현해 내는 것이기도 하다.
사의는 인물이나 산수, 화조화*를 그릴 때 사용된다. 남송南宋의 양해梁楷(량 카이), 법상法常(화 츠앙)과 명대(明代)의 진순陳淳(츠언 쉰), 서위徐渭(쉬 웨이), 청대(淸代)의 주답朱耷(주 따) 등이 이 기법에 뛰어났다. 송대(宋代)의 한졸韓拙(한 주어)은 “붓을 놀리는 데는 쉽고 간단하게 하면서도 뜻을 완전히 표출해내는 것이 있고, 교묘하고 치밀하여 자세히 묘사하는 것이 있다”고 말했는데 전자가 바로 사의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이버네틱 아트 Cybernetic Art(영)
기술공학적인 조각 혹은 관람자의 접근이나 소음 등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예술작품으로 키네틱 아트*의 발전된 형태이다. 라틴어로 ‘키잡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사이버네틱스는 인공두뇌학으로 번역되며, 제2차세계대전 직후 미국의 수학자인 비네Robert Wiene에 의해 제창되었다. 인공두뇌학은 생물과 기계의 상호유추관계에 있어서 통신, 제어, 계산 등의 정보기술과 이론을 총합한 새로운 형태의 과학이다. 사이버네틱 아트는 이러한 인공두뇌학에 기초하는 과학 기술에 의해 예술의 환경화와 사회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으로 195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쇠페르Nicolas Schöffer(1912~ )같은 작가들은 움직임의 원리를 과학 기술이나 기계의 동작에 대응하는 것이 아닌, 우주나 자연의 법칙에 조응시키는 조형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1954년 쇠페르는 환경의 변화에 의해 작동하는 <공간 역학 사이버네틱스 음향탑>을 제작한데 이어, 1961년에는 66개의 회전 거울과 120개의 다색 투광기와 제어장치를 지닌 탑을 벨기에의 리에주에 설치하였다.
이처럼 외부 환경으로부터의 자극, 즉 소리, 움직임, 빛, 바람, 온도 등의 정보를 각종 감응장치에 의해 감지하고 그 변화에 따라 작동하여 움직이는 미술 작품을 일컫는 사이버네틱 아트는 오늘날에는 인간의 뇌파에 음향장치를 연결한 사이버네틱 음악과 퍼포먼스*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사이버네틱 아트 작품의 작동의 제어에는 일반적으로 컴퓨터가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조형 작품들은 움직임의 원리를 과학기술과 기계의 동작에 대응시키기보다 우주와 자연의 법칙에 순응시키고자 하며, 작품 자체의 의지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사이키델릭 아트 Psychedelic Art(영)
사이키델릭이란 ‘psycho’와 ‘delicious’를 합성한 일종의 심리적 황홀 상태를 가리키는 신조어로서, 이러한 상태를 연출하는 것이 사이키델릭 아트이다. 환각 미술 혹은 일명 ‘엘에스디LSD 아트’라고도 불리며, 환각제 복용에 의한 환시와 환청 등의 체험을 재현할 것을 추구한다. 196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USCO 그룹이 실험적인 작품 활동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1960년대 중엽 뉴욕을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 1943년에 발명된 환각제인 LSD는 미량의 복용으로도 극채색의 선명한 환각 무늬가 시각적으로 체험된다. 이것은 원래 스위스의 한 제약회사가 정신병 치료제로 개발했으나, 1960년대 미국에서 히피 문화와 함께 대량으로 유포되어 사회문제를 초래하였다. USCO 그룹은 LSD를 복용하지 않고도 복용한 것 같은 환각 증세를 강렬한 빛과 음향, 색채, 진동의 동시 자극 등에 의해 연출하여 인간 의식의 확대를 시도했다.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이상한 의식 확대와 병적인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울프Tom Wolfe의 《차가운 LSD 교감 테스트》 등 환각제 문학을 탄생시켰다.
사이키델릭 아트는 다채로운 색채와 유기적인 곡선의 형태로 자극적이고 몽환적인 무늬를 나타낸 회화*, 디자인, 포스터*, 실내장식을 가리킨다. 사이키델릭 디자인의 이차원적인 표현을 삼차원으로 바꾼 사이키델릭 환경(environment)은 음악과 조명, 오락과 결합하여 고고뮤직홀의 환경을 구성하는 차원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특수한 인위적 환경 속에서 관람자는 통상적 이성의 작용을 초월하여 해방된 오감의 세계를 향한 여행, 즉 내부 여행(inner trip)을 경험하게 된다. 사이키델릭 아트는 미술 이외에 그래픽 디자인*, 영상, 사진* 분야에서도 크게 고조되었으며, 히피 운동, 로큰롤 음악의 유행과 더불어 패션과 사회풍속에까지 침투하였다.
사직단 社稷壇 she-ji-tan(중)
종묘와 함께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물의 신인 ‘직稷’을 제사지내는 곳. 사직에 대한 제사는 중국에서 주대(周代) 이전부터 있었던 듯하고, 후한後漢의 건무建武 2년(26)에는 낙양의 종묘 서쪽에 태사직단(太社稷壇)이 설치되었다. 이후 명대(明代) 초기까지 대체로 지속되었고 수도의 태사직단은 종묘의 서쪽에 설치되었다. 또한 사단(社壇)은 동쪽에, 직단(稷壇)은 서쪽에 놓였는데, 각각 후토신(后土神)과 후직신(后稷神)을 제사지내고 규모는 사방 5장, 높이 5척, 두 단의 거리가 5장이었다.
사단은 사방을 청백적흑(淸白赤黑), 윗면을 황색의 흙으로 덮고 직단은 5색의 흙을 쓰지 않았다. 명대 초기에는 사직불가분설(社稷不可分說)로 인하여 남경의 태사직단이 상하 2단으로 고쳐지고, 15세기초부터 북경에도 상하 2단으로 되었다. 송대(宋代)부터 청대(淸代)까지 부(府), 주(州), 현(縣)에서도 각각 사직단을 설치했다.
한국에서는 단을 2개로 만들어 사단은 동쪽에 직단은 서쪽에 배치하여 사방이 각각 2장 5치로 북쪽에서 남으로 향하게 하였고 사방으로 계단 3층을 쌓았다. 현재의 사직공원 안에 남아있다.
사진 寫眞 hsie-chen(중)
동양회화에서 초상화*를 가리키는 말. ‘전신(傳神)’ ‘전진(傳眞)’ ‘사조(寫照)’ ‘사모(寫貌)’ 라고도 한다. 진(眞)이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은 초상화의 주인공의 외모뿐 아니라 인품 곧 정신까지도 표현해야 한다는 이상을 나타내는 것인데, 중국화론의 기본 가운데 하나인 기운론(氣韻論)에 입각한다고도 할 수 있다.
사천왕상 四天王像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네 명의 대천왕으로, ‘사대천왕(四大天王)’ ‘사왕(四王)’ ‘호세천왕(護世天王)’이라고도 부른다. 원시경전인 《장아함경長阿含經》 〈제5전존경第五典尊經〉 제3에는, “사천왕은 그 방위에 따라 각기 자리를 담당하고 정법을 수호하고 마귀의 습격을 방지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천왕이 조형화된 것은 4세기경에 성립한 《금강명경金剛明經》이나 《관정경灌頂經》이 유행하기 시작한 이후부터이다. 인도에서는 간다라* 지역에서 출토된 불전도*나 부조*에 사천왕상이 나타나는데, 주로 고대 인도의 귀인 형상을 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화되면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무인형의 형상으로 정착된다. 운강석굴* 가운데 천왕은 천관(天冠)만 쓰고 갑옷은 입지 않아 무인상으로 정착되기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수隋, 당唐 이후에야 비로소 갑옷을 입고 천관을 쓴 무장의 형상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무장형의 사천왕상은 중국, 한국,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사천왕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 들고 있는 지물*이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칼과 창, 탑 등의 무기를 들고 있다. 그런데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은 항상 보탑을 들고 있어 명칭을 확인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한편 원대(元代) 이후에는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사천왕이 조성되는데, 동방지국천왕(東方地國天王)이 비파(琵琶),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이 보검(寶劍), 서방다목천왕(西方多目天王)이 나삭(羅索), 북방다문천왕이 사리탑*이나 은서(銀鼠)를 쥐고 있다.
한국에서는 신라선덕여왕 때 양지良志라는 승려가 사천왕상을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있어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통일신라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 출토(出土) 녹유사천왕상전綠釉四天王像塼〉, 감은사지感恩寺址 3층석탑 출토 청동사리구(靑銅舍利具)에 부착된 사천왕상, 〈석굴암石窟庵의 사천왕상〉 등이 있다.
사티로스 Satyros(영)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물. 주신(酒神)인 디오니소스(로마신화에서의 박쿠스)의 종자(從者)로서 이탈리아 신화에서는 ‘파우니Fauny’라고 불린다. 머리에는 뿔이 달려있고 뾰족한 귀와 수염이 특징적이며 때때로 굽을 들고 있다. 기원전 6세기말 아테네에서 열렸던 디오니소스 대축제에서는 비극의 상연 후에 풍자적인 희극인 사티로스극이 공연되었는데, 여기에서 합창단은 사티로스의 모습을 모방한 의상을 입었다. 사티로스는 처음에는 말의 꼬리와 귀를 지니고 수염이 나지 않은 젊은 남자로 표현되었으나, 후에 염소의 다리와 꼬리를 가진 남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사티로스의 이러한 외모는 ‘실레노스Silenos’와 혼동될 정도로 유사하고 실제로 이들은 동일한 괴물의 두 가지 다른 이름이라고 간주되기도 한다. 예술작품에서 사티로스와 실레노스는 요정들이나 무녀인 마이나스들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리스의 조각가 프락시텔레스Praxiteles는 사티로스의 동물적인 특성들을 약화시키고 젊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묘사함으로써 새로운 사티로스 상을 창조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도기화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사티로스는 많은 미술작품의 주제로 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