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 2 7

쉬프레마티슴

쉬프레마티슴 Suprematism(프)

→ 절대주의

슈투름

슈투름 Der Strum(독)

1910년 발덴Herwarth Walden(1878~1941)에 의해 베를린에서 창간된 주간 간행물로 곧 전 유럽적으로 전위 작가들의 발판이 되었다. 원래는 문학비평에 중점을 두었으나 코코슈카Oskar Kokoschka(1886~1980)와 다리파* 작가들의 삽화와 목판화*를 실으면서 문예, 미술 종합잡지로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1912년 3월 발덴은 동명의 화랑을 열어 입체주의*, 미래주의*, 다리파, 청기사파*, 황금분할* 등 당대 유럽 아방가르드*의 다양한 면모를 결집한 전시들을 개최하였다. 잡지와 화랑의 이러한 연계적 활동은 미술, 시, 연극, 음악 등의 분야에서 표현주의*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데어 슈투름Der Strum》의 후원으로 발덴은 1913년 15개국의 미술가 90여명과 함께 당대의 독특한 회화적 이해를 보여주는 국제전 성격의 베를린 가을 살롱*전을 개최했다.
1914년 잡지는 월간으로 바뀌었고, 클레Paul Klee(1879~1940), 샤갈Marc Chagall(1887~1985), 글레즈Albert-Léon Gleize(1881~1953), 뒤샹-비용Raymond Duchamp-Villon(1876~1918), 마르크Franz Marc(1880~1916) 등의 전시가 계속되었다. 1916년 이들은 ‘슈투름슐레Strumschule’라는 미술학교를 세웠으며, 1917년에는 ‘슈투름뷔네Strumbühne’라는 실험극장도 설립하였다. 《데어 슈투름》지는 나치즘이 대두하여 1923년 폐간될 때까지 새로운 예술운동의 추진체로서 기여하였다.

슈파눙

슈파눙 Spannung(독)

원래는 긴장, 전압(電壓) 등의 의미를 갖는 말로, 조형미술에서는 점이나 선에 내재된 힘, 색채의 수축과 팽창 등 어떤 장면의 구성요소들의 상호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긴장감을 가리킨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가 즐겨 쓴 개념으로, 그에 따르면 회화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것은 형태의 외형이 아니라 형태가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힘이며, 이 힘이 바로 슈파눙이다. 내적으로 조직된 슈파눙의 총계에 의해 작품 내용이 표현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순한 하나의 점은 구심적(求心的) 슈파눙을 가지고, 직선에는 2개의 슈파눙이 있으며, 곡선은 3개 이상의 슈파눙을 포함한다는 식이다. 색에 대해서도 진출성과 후퇴성, 수축성과 팽창성 등은 색의 슈파눙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슈파눙은 구성요소의 대감각적(對感覺的) 성질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슈파눙 관계에 중점을 두는 구성법은 아카데믹한 구도법과는 그 관점이 다르다. 회화뿐 아니라 모든 조형 작품에도 적용가능한 개념이긴 하지만, 오늘날에는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으로 간주된다.

슝가시대 미술

슝가시대 미술 Śunga Period Art(영)

기원전 185년 푸시야미트라Pusyamitra가 마우리야시대* 의 마지막 왕을 시해하고 새롭게 슝가 왕조를 세웠다. 슝가 왕조(기원전 185~72)의 중심지는 마가다(현 비하르와 벵골)였지만 중인도의 말와Malwa까지 세력이 뻗쳐 있었다. 슝가시대의 미술은 대부분 스투파*를 둘러싼 석조 문(토라나*)과 울타리(베디카*)에 새겨진 조각*들이다. 이런 조각의 예들은 바르후트*, 산치*의 제2탑 등에서 볼 수 있다. 본생담*과 불전도*가 조각의 주된 주제이지만 불타의 형상은 족적이나 보리수 등의 상징으로만 표현되어 있다. 슝가시대에 제작된 조각은 가장 초기 불교 미술*의 예들이다. 수도였던 비디샤Vidiśā에서는 석조의 쿠베라*상과 약시*상이 발견되었다.

스냅사진 미학

스냅사진 미학 snapshot aesthetics(영)

20세기 사진은 보도사진*이거나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찍은 스냅사진이 주류를 이룬다. 아마추어 스냅사진은 자의적인 요소나 복잡한 기교가 가장 적게 사용된 사진기법으로, 사진은 어떠해야 한다는 통념이나 사진기의 성능 자체에 의해 결정되는 일정한 관례에 따른다.
대부분의 스냅사진은 자연광 아래에서 주제를 중앙에 배치하는 방식을 따르며, 작은 인화지와 흑백필름을 선호한다. 스냅사진에서는 종종 그 비계획성과 순간적인 장면의 포착으로 인하여 종종 기교가 뛰어난 전문 사진작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이와 인간미가 나타나기도 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소박하지만 표현력이 강한 스냅사진은 예술사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스냅사진 미학’의 주창자는 프랭크Robert Frank로 그는 1959년 《미국인》이란 흑백사진집을 출간했다. 프랭크의 이 책은 세속적인 주제 뿐 아니라 비교적 솔직한 사진양식을 보여준 것으로 당시로는 혁신적이었다. 스냅사진미학은 아담스Ansel Adams(1902~1984),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1864~1946), 웨스턴Edward Weston(1886~1968) 및 그외 정통 사진* 주창자들이 표방한 격조높고 신비스러운 사진작품을 추종한 것은 아니었지만, 카메라에 주로 의거하고 기교를 부리지 않는 것은 정통 사진의 한 지류(支流)로 볼 수 있다.

→ ‘정통 사진’ 참조

스리랑카 미술

스리랑카 미술 Sri Lankan Art(영)

스리랑카의 싱할리즈Singhalese 왕조는 기원전 5세기에 창건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보다 분명한 역사는 데바남피야-티사왕Devānampiya Tissa이 즉위한 기원전 247년부터이다. 이 왕의 재위 중에 아쇼카왕Aśoka의 아들인 마힌다가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해주었다. 기원전 3세기경 인도로부터 불교가 전래된 이래 스리랑카의 건축과 조각*은 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특히 인도 동쪽 해안지방에 있던 안드라* 왕조의 미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초기의 수도는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였으나 8세기경 남인도의 타밀인들의 침입을 받아 수도를 폴론나루와Polonnaruwa로 옮겼다. 그러나 폴론나루와도 15세기경 타밀인들에게 함락되었다. 스리랑카의 사서(史書)인 《마하밤사Māhavamsa》와 《출라밤사Cūlavamsa》는 사원 건축 방법과 사당의 봉헌 의식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스리랑카 미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누라다푸라 지역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스투파*인 다가바*이다. 투파라마Thūpārāma 다가바는 기원전 3세기경에 봉헌된 스투파이고 루완벨리Ruvanveli 다가바는 기원전 1세기경까지 올라가는 고탑이지만 후세에 복원된 것이어서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스리랑카의 불교 사당들은 비하라*(vihāra)라고 부르는데 대형 다가바들 옆에는 이러한 비하라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장방형인 건물의 내부에는 지붕을 받치는 열주*가 늘어서 있다. 이 기둥들은 방형이나 팔각형인데 목 아랫부분에는 사자 머리가 있고 그 위에는 연화 주두* 및 동물들의 띠가 올려져 있는 독특한 형식이다.
기원전 1세기경 조영된 로하파사다Lohapāsāda(놋쇠 궁전)는 현재 기초부만 남아있으나 1,600여 개의 기둥을 세워서 지은 매우 큰 건축물이다. 스리랑카의 불교는 일반적으로 불교부파의 하나인 상좌부(上座部)이지만 8세기경에 만들어진 인디카투사야Indikatusaya 다가바에서 반야(般若)의 게송(偈頌)이 새겨진 동판이 발견되어 스리랑카에도 대승 불교가 들어왔었음을 알 수 있다.
싱할리즈 건축이 아마라바티*의 후기 안드라 건축과 연관성이 있듯이 2~3세기에 만들어졌던 조각에서도 이러한 연관성이 나타난다. 루완벨리 다가바의 기단부 둘레에 세워져 있던 석조 불입상 2구와 보살입상 1구는 후기 안드라 왕조* 시대의 아마라바티 불상 형식을 변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누라다푸라의 초기 조각에서는 드바라팔라(문지기) 부조*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뱀신인 나가*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세장한 비례는 아마라바티의 상들을 떠올리게 한다. 아누라다푸라의 사당 입구에는 반원형 모양의 ‘문 스톤(moon stone)’(반월석)이 깔려 있다. 이 돌에는 네 방위를 상징하는 동물들인 사자, 코끼리, 말, 황소 및 거위 등이 새겨져 있다.
8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수루무니Isurumuni 비하라의 마애부조는 팔라바* 시대의 조각과 매우 유사하다. 시기리야Sīgiriya 석굴의 벽화는 6세기경의 그림으로서 아마라바티 부조에 나오는 여인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781년 수도를 스리랑카 동북부의 폴론나루와로 옮겼는데, 이 지역에서의 조형 활동은 파라크라마바후Parākramabāhu 1세(재위 1164~1197)의 치세 기간이 전성기였다.
갈Gal 비하라에는 약 15m 길이의 불열반상이 있는데 아누라다푸라의 불입상처럼 옷주름을 반복적인 평행 융기선으로 표현했다. 열반상의 머리 옆에는 7.5m 높이의 아난(阿難) 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후대의 건축물 중에는 니상카 말라왕Nissanka Malla의 재위시(1198~1207)에 만들어진 사당과 비하라들이 주목할 만하다. 피라미드 모양의 사당인 사트 마할 파사다Sat Mahal Pāsāda, 달라다게Daladāgē(불치佛齒 사당), 와타다게Vatadāgē(원형 불치 사당) 등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 폴론나루와 북쪽에는 촐라 왕조*의 건축을 연상시키는 북방 사원이 있는데 성소의 내벽에는 훼손이 심한 본생도*들이 장식되어 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에는 6~8세기(혹은 8~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황동 파티니 데비Pattinī Devī상이 소장되어 있다

스완칼로크

스완칼로크 swankalok(타)

14~15세기에 많이 만들어진 타이*의 도자기로 메남강 중류에 인접한 스완칼로크 가마*(窯)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타이의 도자기 제작은 13세기경 중국 도공으로부터 도기 제작법을 배워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수코타이 지방의 것이 가장 오래되었다. 철회(鐵繪)도기, 청자*(靑磁), 흑이유(黑飴釉)를 칠한 것, 실투성(失透性)의 백탁유(白濁釉)를 칠한 것 등이 있다.
도자기의 종류로는 평발(平鉢)이 많고 항아리(壺), 물주전자, 쌍이병(雙耳甁), 술잔 등도 있다. 15세기 중엽 스완칼로크의 도공들은 쳉마이로 이주하여 철유(鐵釉)와 철회 도기를 만들었으나 16세기 중엽부터 점차 쇠퇴했다. 타이의 도자기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일본에까지 널리 수출되었다. 모모야마 시대* 이후 일본에서는 이 도자기를 ‘순코로쿠(宋胡錄)’라고 불렀다.

스케치

스케치 sketch(영)

일반적으로 미술가들이 본격적인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예비적인 착상을 기록해두기 위해 그리는 대략적인 밑그림 혹은 대상물을 신속하게 묘사하는 습작. 단순히 약화(略畵)라고도 하는 스케치의 개념은 르네상스기에 확립되었고 치밀하게 묘사하는 에튀드*와는 개념상 구별하여 사용한다.
한편 그 자체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소품을 가리키기도 한다. 전통적인 밑그림용 스케치는 대체로 전체 구도와 배치에 역점을 둔다. 이것은 주로 미술가의 작업지침으로 사용되지만, 라파엘로Raffaello Sanzio(1483~1520)나 루벤스Pieter Paul Rubens(1577~1640)같이 많은 조수들을 고용하여 함께 작업하는 공방*의 경우에는 스승이 조수들에게 작업을 지시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스케치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첫번째는 크로키*로서 작가가 보고 기록해두고 싶은 정경이나 사건을 재빨리 그린 것이다. 두번째는 일반적으로 색채를 사용하여 풍경의 분위기와 전체적인 인상을 기록하는 포샤드이다. 세번째로는 초상화*와 관련되어 모델이 될 인물의 순간적인 표정이나 신체적 특징을 표시해두기 위한 스케치가 있다. 18세기 이후에 스케치는 이러한 전통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아 펜이나 연필같은 간단한 매체를 이용하여 시각적 경험을 그리는 가볍고 즉흥적이며 그 자체로서 완결된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자연스러움과 생동감을 선호하는 낭만주의*적 태도와 자연예찬, 여행수단의 발달, 아마추어 미술인의 증가 등에 힘입은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다른 작품을 위한 예비 단계나 습작 정도로 인식되었던 과거의 스케치 작품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스퀸치

스퀸치 squinch(영)

건축 용어. 펜던티브*와 함께 정방형의 평면 위에 돔*을 만들어 놓는 방법. 첨탑이나 돔과 같은 상부구조를 지지하기 위하여 정방형의 각 모퉁이를 가로질러 만든 작은 아치* 또는 까치발 등의 장치이다. 이 모서리를 가로지르는 작은 아치의 꼭대기에 돔의 원형 밑면이 세워지는데, 각 스퀸치는 아랫부분보다 직경이 점점 더 커지며 돔의 발단부는 팔각형의 모양이 된다. 고대 로마에서도 볼 수 있으나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스키타이 미술

스키타이 미술 Scythian Art(영)

기원전 7~3세기 사이 흑해 북쪽 연안에 거주하던 이란계 종족인 스키타이의 조형예술*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기원전 1000년경 북방 유라시아 스텝 지대에 거주하던 유목민의 미술도 포함된다. 왕족이나 귀족의 무덤인 쿠르간(kurgan)에서 발견된 부장품들이 스키타이 미술을 대표한다. 부장품은 기원전 7~5세기까지의 전기와 기원전 4~3세기까지의 후기로 구분되는데 전기의 미술은 고대 오리엔트 지역의, 후기의 미술은 그리스*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전기의 중요한 쿠르간으로는 리트이, 코스트롬스카야, 올리스키이 등이 있고, 후기의 예로는 솔로카, 쿨 오바 등이 있다. 금, 은, 청동으로 만든 독자적인 동물의장(動物意匠)의 공예품이 스키타이의 중요한 미술품이다. 후기에는 금세공을 위주로 하는 호화롭고 섬세한 작품이 많은데, 대부분은 흑해 연안의 그리스 도시에서 수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그리스의 세공 기술을 습득한 스키타이인들이 만든 작품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스키타이 미술은 흑해 북쪽 연안뿐 아니라 서쪽으로는 다뉴브 강에서부터 동쪽으로는 몽골에 이르는 유목민들 사이에 전해졌으며 약간의 지역적인 차이는 있으나 북방 유라시아 지역의 보편적인 유목 미술을 형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