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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스틸

데 스틸 De Stijl(네)

‘양식(the style)’에 해당하는 네덜란드어. 반 되스부르크Theo van Doesburg(1883~1931)를 축으로 몬드리안Piet Mondrian(1872~1944), 화가 겸 조각가 반통걸루Georges Vantongerloo(1886~1965), 시인 코크Antonie Kok, 영화감독 리히터Hans Richter(1888~1976), 건축가 우드J.J.P.Oud 및 리에트벨트Gerrit Rietveld(1888~1964) 등에 의해 1917년 네덜란드에서 결성된 기하학적 추상*미술 그룹. 반 되스부르크가 창간한 미술잡지 《데 스틸》은 라이덴과 파리에서 1928년까지 계속 발행되었다.
이 그룹은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를 강력히 옹호하고 새로운 조형예술운동을 전개하였다. 참가한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데 스틸 운동은 단순히 회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조각, 건축, 디자인 등 각 분야에 걸쳐 신조형주의의 원리를 넓히려 했으며, 네덜란드는 물론이고 양차 대전 사이에 유럽 예술 전체의 동향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1920년경에는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와 상호 협력하였으며, 그 결과 산업 디자인*, 상업미술* 등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데드 마스크

데드 마스크 death mask(영)

죽은 사람의 모습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뜨는 안면(顔面)상. 죽은 후 얼굴에 유토(油土)나 점토를 발라 모형을 만든 다음, 다시 그것으로 석고 따위를 사용하여 만든다. 최초의 마스크가 언제, 왜 만들어졌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기원전 2400년 초 고대 이집트에서 행해졌고 기원전 1400년 아마르나 시대에는 초상화 모델 역할을 하였다.
데드 마스크는 에트루리아와 로마의 조상 숭배 및 가족 제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15세기 피렌체에서도 존재하였으며, 아눈치아타Annunziata 교회는 유명한 마스크들을 소장하고 있다. 그때 이후로 유명인들의 데드 마스크를 뜨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데바라자

데바라자 devaraja(범)

데바deva는 신(神), 라자raja는 왕(王)이라는 뜻으로 왕을 신격화한 신왕(神王)을 의미한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시대(9~15세기 전반)에 행해진 독특한 신앙 형태로서 초대왕인 자야바르만Jayavarman 2세(재위 802~854) 때부터 확립되었다. 앙코르 시대의 여러 왕들은 주로 힌두교의 시바*신을 숭배하였으므로 신왕은 링가*의 형태로 신앙시되었다.
또한 왕들에게는 사후에 신과 하나가 되었다는 뜻으로 신의 명칭이 시호로 붙여졌다. 예를 들면 자야바르만 2세는 ‘바라메쉬바라(最勝自在神)’, 야쇼바르만Yashovarman 1세(재위 889~910)는 ‘바라마시바로카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비슈누*신을 믿은 수리야바르만Suryavarman 2세(재위 1112~1151)는 ‘바라마비슈누로카라’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불교를 신봉한 자야바르만Jayavarman 7세(재위 1181~1220) 때에는 왕과 불타를 일체화한 신앙에 근거하여 불상*(佛像)을 숭배하였다.

데생

데생 dessin(프)

→ 소묘

데울

데울 deul(범)

오리사 지역에서 힌두 사원*의 성소인 비마나*를 부르는 명칭이다.

→ ‘비마나’ ‘힌두 사원’ 참조

데이시스

데이시스 deisis(그)

기독교 미술 주제의 하나. 본래는 청원(請願), 기원(祈願)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다. 제단화*나 비잔틴 모자이크*에서 자주 보이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을 좌우에 거느린 옥좌의 예수와 최후의 심판 장면을 묘사한 것을 지칭한다. 전 인류의 사면을 예수에게 청원하는 중재자로서의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은 고개를 수그리고 손을 내미는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데카당스

데카당스 décadence(프)

‘퇴폐’라는 뜻으로, 문화의 미적 퇴폐 과정 및 그 결과 또 난숙기의 예술적 활동이 그 정상적인 힘이나 기능을 잃고, 형식적으로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이상한 감수성, 자극적 향락 따위로 빠지는 경향. 종종 쇠퇴기에 있어서 사회 전반의 부패 현상에 대응하는 탐미주의나 악마주의의 형태로 되어 극단적인 전통 파괴, 배덕(背德), 생에 대한 반역 등을 수반한다.
그러나 데카당스 현상은 전시대 문화의 붕괴를 촉진하여 새로운 발전 능력을 낳는다고 하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뜻도 지니고 있다. 니체Friedrich W. Nietzsche(1844~1900)는 데카당스를 ‘힘에의 의지’의 감퇴현상으로 보았고, 지드André Gide는 ‘데카당스의 문화’는 ‘문화의 데카당스’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문화 발전에 있어서 적극적 의의가 인정된다고 보았다.

데칼코마니

데칼코마니 décalcomanie(프)

유리판이나 아트지 등의 비흡수성 소재에 그림물감을 칠하고 거기에 다른 종이를 덮어놓고 위에서 누르거나 문지른 다음, 떼어내어 기묘한 형태의 무늬가 생기게 하는 기법. 데칼코마니는 ‘복사하다, 전사(轉寫)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décalquer와 ‘편집(偏執)’이라는 뜻의 manie의 합성어로 ‘전사법’ ‘등사술’의 뜻을 지닌다. 1935년 도밍게즈Oscar Dominguez(1906~1958)가 최초로 발명해낸 데칼코마니는 무의식, 우연의 효과를 존중하는 비합리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그러한 우연성 속에서 여러 가지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는 흥미에 이끌려 제2차세계대전 직전에 에른스트Max Ernst(1891~1976)가 종종 사용한 이래,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즐겨 쓰기 시작한 중요한 표현 수단의 하나가 되었다.

데콜라주

데콜라주 décollage(프)

원래 ‘붙인다’는 뜻의 콜라주*와 반대의 뜻으로 떼어내고 박탈한다는 의미. 일상적인 사물을 찢어내고 지우고 불태우는 등의 파괴행위에 의해 우연한 효과를 기대하는 방법이다. 그 목표는 물질의 소비 메커니즘적인 관념을 강제적으로 타파하고 새로운 미적 현상의 가능성을 찾아내려는 데 있다.
이 용어는 플럭서스*의 독일 대표격인 포스텔Wolf Vostell이 1960년대 초에 조직했던 그룹의 기관잡지 《데콜라주》에서 유래한다. 포스텔은 데콜라주가 단순히 장식상의 기법적 차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즉 파괴적인 행위를 거듭함으로써 우연성의 창조적 흔적과 사회적인 비평성을 찾아낼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데콜라주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플래카드를 찢는 다다*의 표현행위를 다시 등장시킨 동시에, 질적 변화를 통해 그 찢기와 지움에 의해 생기는 낱말의 단편과 문자의 중복으로부터 기대치 않았던 효과를 발생시키고 그것을 그 나름의 선동적인 표현행위로 귀착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1934년 초현실주의* 화가들로부터 시작해서 1950년대에는 유럽에서 널리 퍼져 텔레마크Hérve Télémaque와 로텔라Mimmo Rotella(1918~ )같은 신사실주의* 미술가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다.

→ ‘콜라주’ 참조

데콩포제

데콩포제 décomposer(프)

분해 또는 해체한다는 뜻. 보통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눈에 비친 사물을 그대로 화면에 재생하는 것이지만, 입체주의* 화가들은 보이지 않는 면까지 화면에 끌어내어 사물의 진상을 밝히려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연물을 그대로 그려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므로 어느 면을 한 번 해체한 다음 다시 조립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해체 과정을 데콩포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