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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공

두공 斗栱 tou-kung(중)

중국, 한국, 일본에 전래하는 전통 목조건축 용어. 대들보나 도리*에 가해지는 무게를 모아 기둥에 전하는 역할을 하도록 끼워 넣은 일종의 결구물. 지역과 시대에 따라 형식적 변화가 있지만 기본 원리는 같다. 두공은 원래 중국어이지만, 송대(宋代)에는 ‘포작(鋪作)’, 청대관식(淸代官式)에서는 ‘두과(斗科)’, 강남(江南)에서는 ‘비과(牌科)’라고 불렀다. 두공은 배치되는 장소에 따라 외첨(外檐)포작, 신조내(身槽內)포작, 평좌(平坐)포작 등으로 나뉜다. 또 기둥과의 위치관계에 따라 기둥위에 놓이는 주두(主頭)포작, 기둥과 기둥 사이에 놓이는 보간(補間)포작, 모서리 기둥 위에 놓이는 전각(轉角)포작 등으로 구별된다. 한국에서는 ‘공포*(栱包)’라고 불린다. 공포는 배치에 따라 기둥 위에만 있는 형식을 주심포*(柱心包) 양식, 기둥 위에 공포를 배치할 뿐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 창방*(昌枋)을 놓고 그 위에 공포를 배치하는 형식을 다포*(多包) 양식, 기둥 머리에서 전후 방향으로 첨차형(檐遮形) 부재를 꽂아 그것으로 보*(樑)를 지탱케 하는 익공*(翼工) 양식이 있다. 일본에서는 마수기미(斗組), 구미모노(組物)라고 한다.

두광

두광 頭光 siras-cakra(범)

→ ‘광배’ 참조

두루마리

두루마리 roll(영)

종이나 천을 여러 장 이은 후 끝단에 축(軸)을 끼워 말 수 있도록 한 것. ①중국 고대의 두루마리는 여러 장의 종이를 겹친 책자나 그림을 보존하는데서 비롯되었다. 책자의 경우 서권(書卷)이라 하고 그림은 화권(畵卷)이라고 한다. 양자를 합친 것은 합벽권(合璧卷)이라고 한다. 한대(漢代)에 종이가 발명된 이후에 보존과 장식을 위해 축이나 표지를 붙이게 되었고, 육조(六朝)시대에는 표장(表裝) 형식이 갖추어졌다. ②글을 적은 파피루스*나 양피지(羊皮紙)의 긴 종이. 때로는 그림을 넣었고, 필사본*이 소개되기 전까지 책으로 사용되었다. 같은 뜻으로 ‘스크롤(scroll)’, 라틴어로는 ‘로툴루스(rotulus)’라고 부른다.

두르가

두르가 Durgā(범)

‘접근하기 어려운 자’라는 뜻을 가진 힌두교 여신을 말한다. 두르가를 모시는 개별적인 사원이 건립될 정도로 높이 숭배되고 있다. 두르가 여신의 특징은 시바*신의 배우자로서의 어머니라는 측면과 전사로서의 영웅적인 측면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악마(아수라*)인 마히샤Mahisa를 물리친 이야기가 유명하며 이 때의 두르가는 마히샤수라마르디라고 불린다. 굽타 시대인 401년에 조성된 우다야기리Udayagiri 석굴의 제6굴에는 마히샤수라마르디의 이야기가 조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두타초

두타초 頭陀草

조선후기 문인 이하곤李夏坤(1677~1724)의 문집. 전체 18책으로 1,650여편의 시(詩)와 서(書) 등이 실려 있다. 이 중 중국 회화나 고려, 조선시대 회화에 대한 안목있는 비평이 많아 주목된다. 소개되어 있는 중국 화가는 당대(唐代)의 왕유王維(우앙 웨이, 699~759), 송대(宋代)의 마원馬遠(마 위엔), 하규夏珪(시안 꾸에이), 조백구趙伯駒(자오 뿌어쥐), 유송년劉松年(리우 쏭니앤), 원대(元代)의 조맹부趙孟頫(자오 멍후, 1254~1322), 전선錢選(치앤 쉬엔, 1235~1301년 이후), 명대(明代)의 심주沈周(선 저우, 1427~1509), 동기창董其昌(똥 치츠앙, 1555~1636), 청대(淸代)의 맹영광孟永光(멍 융구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고려나 조선시대 화가에 대한 언급은 공민왕恭愍王, 이징李澄(1581~1645), 이덕익李德益, 윤두서尹斗緖, 정선鄭敾(1676~1759) 등이 있는데, 화가와 그림에 대한 간략한 평가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화론서와 서화를 두루 섭렵했던 이하곤은 학식이 높은 선비화가들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고 사의*(寫意)를 중시하였던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중시하는 것과 더불어 그리는 대상을 닮게 그리는 형사(形似)도 중요시하는 독특한 회화관을 전개하여 당시로서는 진취적인 회화관을 제기하였다. 이는 당대(當代)의 화가 윤두서가 그린 자화상*이나 말그림, 노승도(老僧圖) 등에 대해 사실성이 높은 훌륭한 그림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아울러 정선의 진경산수*(眞景山水) 그림이 중국식의 그림이 아니라, 자신의 시의(詩意)로서 그려진 개성있는 그림이라는 품평을 함으로써 선구적 비평 안목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회화는 완물상지(玩物喪志)의 대상’이라는 성리학적인 회화관에서 한걸음 나아가 회화에 대하여 높은 가치를 부여하였다.

두폭 제단화

두폭 제단화 diptych(영)

나무나 상아로 만들어진 패널* 두 개가 마치 책과 같은 형태로 접히도록 고안된 패널화 한 쌍. 이러한 형태의 패널화는 로마 시대의 필기용 서판(書板)에서 유래되었는데, 그것은 움푹 들어간 서판의 밀랍 표면을 보호하기 위해 닫혀질 수 있게 만들어졌다. 상아로 된 두폭 제단화는 4세기부터 사용되었으며 로마 집정관이 공직취임을 비롯한 중요한 시기에 황제와 원로원을 알현할 때 썼다. 이러한 집정관용 두폭화의 내부 표면에는 집정관의 이미지와 그를 축하하는 장면들이 새겨졌다. 6세기에 집정관직이 폐지되면서 집정관용 두폭화는 사라졌다.
이후 두폭화 형식은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면 주로 목재로 패널을 만들게 되었으며, 내부에는 이미지를 그려넣어 개인의 신앙심을 표현하기 위한 이동용 제단화로 사용하였다. 이 때 패널의 한 쪽에는 예수나 성모자의 이미지 또는 문중(門中) 성인의 이미지를 그렸으며 다른 한 쪽에는 신앙심에 젖어있는 제단화 주인의 초상화*를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바깥쪽 표면은 종종 개인적인 상징이나 문장(紋章)으로 장식되었다.

→ ‘제단화’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