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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스

코니스 cornice(영)

서양 고대 건축의 주식*(柱式)에서 엔타블러처*를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경우 가장 위에 있는 부분으로 처마 끝을 형성한다. 일반적으로 평평한 키마와 코로나, 그 밑의 장식인 덴틸이나 모딜리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고대 주두*(柱頭)의 경우 도리아 양식*, 이오니아 양식*, 코린트 양식*, 토스카나 양식에 따라 이러한 코니스의 형태와 구조가 차이를 보인다. 이 용어는 현대에 이르러 중요한 장식적 특색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수평 장식쇠시리, 특히 실내의 벽과 천장의 연결부에 있는 장식쇠시리를 지칭한다.

→ ‘엔타블러처’ 참조

코레

코레 kore(그)

소녀를 뜻하는 그리스어.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 아르카익*기의 처녀 입상 조각을 가리킨다. 소년상인 쿠로스*가 나체인데 비해 코레는 모두 옷을 입은 모습이며, 옷 무늬의 표현이 주요 모티브*였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위에서 발굴된 여신의 봉납상 십수구는 ‘아크로폴리스의 코레’로 알려져 있고, 그 채색은 그리스 조각의 색채를 아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코렌테 협회

코렌테 협회 Corrente(이)

1938년 비롤리Renato Birolli에 의해 밀라노에서 설립된 협회. 창립회원은 카시나리Bruno Cassinari, 사수Aligi Sassu, 구투소Renato Guttuso(1912~1987) 등이며, 산토마소Giuseppe Santomaso, 마파이Mario Mafai, 아프로Afro, 파치니Pericle Fazzini, 미르코Mirko,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등이 후에 참여했다.
문학, 미술, 그리고 정치에 관한 잡지인 《비타 지오바닐레Vita Giovanile》는 이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이 잡지는 트레카니에 의해 발행되었는데, 그는 후에 잡지명을 《코렌테 드 비타 지오바닐레Corrente de Vita Giovanile》로 바꾸었다. 이 잡지의 기고자로는 비롤리, 미네코Migneco, 구투소, 만주Giacomo Manzù(1908~1991) 등의 미술가와 데 그라다R. de Grada, 보Carlo Bo, 콰시모도Salvatore Quasimodo 등의 작가와 비평가들이 있다.
코렌테 협회의 첫번째 전람회는 1939년 3월에 개최되었는데, 여러 가지 유파의 밀라노 미술가들에게만 출품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이 협회는 이듬해에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당한다. 그 활동이 1943년까지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원동력을 상실한 협회는 2년후 제2차세계대전이 종결되었을 때에는 완전히 그 기능이 정지되었다.
이 협회는 파시스트에 대한 반대 선언 이외에는 뚜렷한 이념이 없었으며 기질이 각각이고, 예술적 신조가 서로 다른 광범위한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전문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 가지 기본적 원칙, 즉 예술이란 심미적 의무뿐만 아니라 도덕적 의무를 부과한다는 원칙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었다. 그들은 초현실주의*나 표현주의*와 같은 현대 미술운동을 ‘퇴폐미술’( →‘퇴폐미술전’ 참조)이라는 비난으로부터 방어함으로써 이러한 원칙을 이행하려고 노력했다.

코린트 양식

코린트 양식 Corinth Style(영)

도리아 양식* 및 이오니아 양식*보다 후에 발생한 주식*(柱式). 가장 화려하다. 주두*(柱頭)에 아칸서스* 잎을 2단으로 부조 조각하여 두르고, 그 상부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장식을 첨가하였다. 이 양식은 익티누스Iktinus가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코린트 양식을 최초로 도입한 건축은 기원전 500년의 바세신전이며 그리스 후기와 로마 시대에 많이 사용되었다.

→ ‘주식’ 참조

코브라

코브라 COBRA

벨기에 시인 도트르몽Christian Dotremont과 미술가들이 1948년에 결성한 전위 예술 그룹. 코브라란 여기에 모인 작가들의 출신국가인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등 북구 3국의 수도 코펜하겐Copenhagen, 브뤼셀Brussels, 암스테르담Amsterdam의 각 머리글자를 조합한 것. 코브라는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아르 브뤼*의 흐름에 속하는 한편, 북방의 표현주의* 전통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강하다.
1951년까지 암스테르담, 파리 및 리에주 등에서 세차례의 전시회를 갖고 단명하지만 제2차세계대전 후, 유럽의 이성적인 미술에 대항하며 새로운 회화운동을 대표하는 그룹으로서 독자적인 존재를 표명했다. 과학과 이성이 발발시킨 전쟁에 대해 공포감으로 반응한 이들의 미술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다다*에 비견된다. 여러 작가들은 강렬한 구조와 격렬한 색채를 특성으로 하는 소위 ‘코브라 양식’을 지속하였다. 코브라의 구상 이미지들은 선사시대 미술이나 원시미술 또는 민족미술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경탄에서부터 공포에 이르는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그룹의 해산 후에도 그 작가들은 유화 외에 판화*, 삽화, 도예, 벽화* 등의 영역에서 활동을 계속 전개했다. 요른Asgar Jorn(1914~1973, 덴마크), 아펠Karel Appel(1921~, 네덜란드), 알레친스키Pierre Alechinsky(벨기에), 코르네이유Cornelis Corneille, 페더슨Carl Pedersen이 중심멤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