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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미술

티베트 미술 Tibet Art(영)

티베트는 현재의 중국 남서부의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로, 그 미술은 선사시대의 거석문화(巨石文化)가 존재했고, 구리 혹은 청동재의 소품이 출토되었다. 또 7세기경의 여러 왕의 분묘가 조사되고 있으나, 그 밖에 민족적 혹은 세속적인 미술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티베트의 미술은 거의 모두가 종교미술, 특히 불교미술*이다. 종교로는 민간 토착의 여러 신앙이 예부터 있었고, 또 ‘본Bon’이라 불리는 샤먼적 종교가 있다. 불교는 7세기경 주로 인도로부터, 또 부분적으로는 중국으로부터 수입되어 이러한 토착 신앙과 대립되기도 하고, 때로는 절충, 혼합되면서 발전했다.
티베트족이 처음으로 외계의 문화와 접촉하고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7세기 전반의 소첸감포왕Sron-btsan-sgam-po 무렵으로서, 이 왕은 두 왕비(네팔의 공주와 당唐의 문성공주文成公主)에게 감화되어 불교에 귀의하고, 인도에 사람을 보내어 여러 가지 문물이나 불교를 수입하였다고 전한다. 두 왕비가 라사Lhasa에 세운 조칸Jo-khan과 라모체Ramoche라는 건축의 세부에는 당과 이란 등의 영향이 보인다. 어느 것이나 성소* 위에는 중국풍의 커다란 지붕(경사지붕)이 얹혀져 있는데, 이 중국적인 지붕은 7세기 무렵 여러 왕묘의 돌기둥 위에서도 보인다.
그 뒤 티베트의 역사는 거의 불교의 역사이고, 8세기 후반의 티손데첸왕Khri-sron-lde-brtrsan 무렵에는 인도로부터 적호(寂護, Sāntarak-sita), 연화생(蓮華生, Padma-sambhava) 그 밖에 학승이 들어와 불교는 날로 융성해 갔다.
725년경에 불교의 최대 사원으로 삼예사Bsam-yas가 건립되었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원 건축으로서 두칸(hdus-khan, 집회당)이다. 그 설계는 약간 장방형을 이루며 가운데 4개(2개×2열), 많은 경우에는 64개(8개×8열) 혹은 그 이상의 열주*가 있고, 특수한 법회에는 그것들을 아름다운 융단으로 휘감는다. 전면에는 몇 개의 열주를 갖춘 전랑(前廊)이 있고, 천장이 높은 불전은 거의 분리된 듯한 모습이다. 그 외면은 순백색으로 칠식(漆喰, 석회와 찰흙을 풀가사리의 액체로 반죽한 것)을 칠하고, 벽면 상부의 집우 아래에 짙은 갈색의 띠를 둘렀으며 그 곳을 보통 황금색의 길상문(吉祥文) 등으로 꾸몄다.
지붕엔 도금된 보륜(寶輪)이나 사슴, 삼차(三叉), 산개(傘蓋) 등이 장식된다. 열주 사이의 넓은 공간에는 수도승들의 집회, 근행(勤行), 학습의 장이 있고, 그 둘레의 내벽에는 불전이나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다. 전랑에는 생사륜*도(生死輪圖), 수미산도, 사천왕상*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하고, 마니코루*(mani-hkhor)가 놓여 있기도 하다. 불전 안에는 석가불과 그 밖의 불, 보살상, 호법신상 등을 봉헌하고 흔히 대장경도 안치된다. 초르텐mchod-rten(탑)은 인도의 스투파*가 변형, 발전한 것으로 사원의 안팎, 길, 산야 등에 매우 많고 화북에서도 라마탑 혹은 백탑이라 하여 많이 건조되었다. 간체나 참바린의 것이 유명하고, 순례자는 최하층의 기단으로부터 시작하여 우회전하면서 최상층까지 1백여 개의 사묘(祀廟) 혹은 불감*을 차례대로 예배하고, 끝으로 꼭대기의 초르텐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
841년의 란다르마왕Glandar-ma의 폐불(廢佛)조치에 의해 불교는 전반적으로 그 모습을 감추지만, 서부 티베트를 중심으로 다시 부활되었다. 즉 아티사Atisa(982~1054)와 그 밖의 많은 인도 학승이 내방하고, 13세기에는 불교가 부흥하는 형세가 되었다.
불교 도입 이래 성립한 님마파를 비롯하여 가담파, 갈구파, 사갸파 등 여러 파가 흥했다. 15세기에는 촌가파(1357~1419)가 일어나 불교를 개혁하고, 새로이 겔구파의 일파가 창시되었다. 이 파에는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의 이대활불(二大活佛, 화신라마)의 전통이 생겨나고 달라이라마는 제5대(1617~1682) 이래 전 티베트의 종교와 정치의 양권을 장악하여 현재의 제14대 달라이라마에 이르고 있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발전을 거친 불교를 일괄적으로 총칭하여 라마교*라고도 한다. 그것은 인도 불교 말기의 밀교화한 불교가 다시 티베트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미술은 불교의 산물이고, 또 불교에 봉사하는 것으로서 전개되었다. 양식*이나 기법은 인도의 팔라-세나 왕조*의 것이 주축이 되고, 여기에 네팔, 또 카슈미르*나 중앙아시아*(호탄)로부터의 영향과 함께 중국 본토로부터의 영향도 뚜렷하게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옛날에는 인도적이었고, 근대에는 오히려 중국적이라고 한다.
회화*로는 프레스코*벽화가 융성했고, 또 탕가*(than-ka)라고 불리는 화축(畵軸)이 매우 풍부했다. 조각*으로는 소상, 목상 외에 금동상이 많은데, 석상은 비교적 적다. 공예*에는 불구*(佛具)나 법구(法具)에 뛰어난 금세공이 있고, 또 장신구로는 뼛조각 등도 보인다. 일반적으로 미술활동도 하나의 종교적 공덕이라고 생각하였으므로, 회화나 조각의 작자의 이름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존상의 크기나 착색 등은 모두가 의궤류(儀軌類)의 정해진 바에 따라서 해야 했기 때문에, 작가의 개인적인 창조 의욕의 여지는 매우 적었다. 따라서 작품은 모두 한결같고 전통적이어서 그 연대 판정은 명문* 등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