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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티

필로티 piloti(프)

원래는 기둥, 열주*와 같이 건축물을 받치는 것이라는 뜻이지만, 오늘날에는 이층 이상의 건물에 있어 일층에는 방을 만들지 않고, 기둥만 세운 공간을 가리키게 되었다.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56)는 이 공간성을 ‘근대 건축의 5원칙’ 속에 넣고, 1925년경부터 활발히 활용하였다. 파리의 스위스 학생회관이나 마르세유의 아파트 등이 그 대표작이며, 오늘날 근대 건축의 기본적인 스타일의 하나가 되었다. 건물의 일층에서 벽을 제거하고 필로티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은 단지 조형적인 새로움만 아니라 기능상으로도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즉 도시계획적인 관점에서 보아, 이 공간은 자동차나 공중(公衆)을 위한 동선(動線)으로서 개방하고 집무나 거주를 위한 공간은 이층 이상에 둠으로써, 그 활동이 일층에서 생기는 동선에 방해되는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필묵

필묵 筆墨

동양 회화의 용어. ‘필(筆)’은 통상적으로 구(鉤), 륵(勒), 준*(皴), 찰(擦), 점(點) 등의 필법(筆法)을 가리키며, ‘묵*’은 홍(烘), 염(染), 파(破), 발(潑), 적(積) 등의 묵법(墨法)을 가리킨다. 이론상으로는 필을 강조하는 것이 주도적이며 묵은 필요에 따라 나오는데, 서로 보조하면서 대상을 완전히 모사하고, 의경(意境)을 표출해내며, 그리하여 형신겸비(形神兼備)의 예술적 효과를 얻는다.
당唐의 장언원張彦遠(즈앙 이앤위앤, 815~875경)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는, “골기형이(骨氣形以)는 뜻(意)을 세우는 데에 근본을 두지만, 붓놀림(用筆)으로 귀결된다” “먹을 사용하되 온갖 색깔(五色)이 갖추어진 것처럼 한다면 뜻을 얻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입의(立意)와 필묵의 주종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라 하겠다. 북송北宋의 한졸韓拙(한 주어)은 《산수순전집山水純全集》에서, “필로써 형질(形質)을 세우고, 묵으로써 음양을 나눈다”고 하여 필과 묵의 관계를 구분하였다.
청대(淸代)의 심종건沈宗騫(선 쫑지앤)은 《개주학화편芥舟學畵編》에서 필묵의 관계를 양분하는 데에 반대하면서, “필묵이란 두 글자를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고, 묵에 대해서는 더더욱 드물다. 오늘날 사람들은 옅은 먹물로 오목한 곳(凹處)과 어두운 곳을 메우는 것을 묵이라 하는 것을 종종 보는데, 이는 묵으로 색을 대신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그것이 묵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소치이다. 또한 필이 이르지 않는 곳에 어찌 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묵이 이른 곳이라도, 묵이 필을 따라 그 신채(神彩)를 드러내지 못한다면, 기껏 필이 있다고 할 수 있을 뿐, 묵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석도石濤(스 타오, 1641~1717)는 《석도화어록石濤畵語錄》에서 ‘필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필과 묵이 만나면 자욱한 상태(絪縕)가 되고, 자욱한 상태가 구분되지 않으면 혼돈(混沌)이 된다. 혼돈을 피하면서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산을 그림으로 그리면 그것을 신령스럽게 하고, 물을 그리면 그것을 생동하게 하고, 숲을 그리면 그것을 생기있게 하고, 사람을 그리면 그것을 뛰어나게 해야한다. 필묵의 만남을 획득하고 자욱한 상태의 구분을 이해하게 되면, 작품이 혼돈을 피하게 되어 고금에 길이 전해짐으로써 일가(一家)를 이루게 된다. 이 모두 지혜로운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현대의 황빈홍黃賓虹(후앙 빈홍, 1864~1955)은, “필법을 논하자면 반드시 묵법과 함께 논해야 하는데, 묵법의 묘(竗)는 모두 필로써 표출된다”고 생각했다. 동양화에서 강조하는 필묵은 상보상성(相補相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쪽에 치우쳐 다른 하나를 폐할 수 없는 것이다.

필법기

필법기 筆法記

오대(五代) 후량後梁의 걸출한 산수화가 형호荊浩(싱 하오)가 자신의 창작이론을 총괄해 지은 중국 산수화*론 1권. 《산수수필법山水受筆法》 《산수록山水錄》이라고도 한다. 그는 이 책에서 태행산太行山 홍곡洪谷 석고암石鼓岩에서 만난 한 노인과의 문답이라는 형식을 빌려 산수화 창작이론을 전개하였다. 산수화 창작의 원칙일 뿐만 아니라 비평의 기준이기도 한 육요*(六要), 붓을 사용하는 방법에 관한 근(筋) 육(肉) 골(骨) 기(氣)와 같은 사세(四勢), 산수화 창작 중에 나타나는 두 가지의 병폐로 유형의 병(有形之病)과 무형의 병(無形之病)인 이병(二病), 예술적 수준의 고하를 구별하는 신(神) 묘(妙) 기(奇) 교(巧)의 4등급을 언급하였다.
그의 이론 중 가장 유명한 육요는 그림에는 기(氣) 운(韻) 사(思) 경(景) 필(筆) 묵*(墨)의 여섯가지 요체가 있다는 것을 서술한 것이다. 사세와 관련하여 산수의 형상은 기세가 상생(相生)의 관계에 있어야 비로소 봉(峰) 정(頂) 영(領) 수(岫) 애(崖) 암(岩) 곡(谷) 계(溪) 간(澗)의 구별이 생기게 된다고 여겼다. 나아가 구름 숲 산수 등을 묘사할 때는 모름지기 물상(物象)의 본원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외에도 “비슷함(似)이란 형상의 비슷함은 있으되 기가 빠진 것이고, 진(眞)이란 기와 질(質)이 모두 풍부한 것이다”라는 견해를 제기했다. 한편 고송찬(古松贊)을 통해 소나무를 이야기하면서 “시들지 않고 꾸밈도 없는 것은 오직 저 곧은 소나무뿐(不凋不容 惟彼貞松)”이므로 ‘군자의 풍모’를 지녔다고 했다. 이는 이후에 “사람의 품격이 높지 않으면 그림에 법도가 없다(人品不高 用墨無法, 이일화李日華(리 르화) 《자도헌잡철紫桃軒雜綴)).”는 이론의 선례가 되었다. 아울러 당대(唐代)의 여러 산수화가들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간략한 서술을 하였다. 《신당서新唐書》 《예문지藝文誌》에서는 형호가 지은 것으로 나오지만, 청淸의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후대 사람의 저술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필사본

필사본 筆寫本 manuscript(영)

인쇄를 하지 않고 손으로 글을 써서 만든 서적을 말한다. 필사본 이외에도 수서본(手書本), 서사본(書寫本) 등 여러 가지 명칭이 있으며, 인쇄술이 발달하면서부터는 원본을 베낀 책이나 서류 등을 함께 일컫게 되었다. 사본은 활자본, 판각본과 구별해서 쓰이며 인쇄술 발명 이전의 출판 형태이다. 고대나 중세의 문서류는 돌이나 점토판 혹은 금속판에 새겨진 것, 나무 조각이나 대나무 조각에 필사된 것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에 서사한 사본의 형식으로 전승되었다.
고대에는 두루마리* 형식의 권자본(卷子本)이었으나, 서양에서는 3~4세기 이후 장정된 책자본(冊子本)이 주류가 되었다. 그 후에 나타난 이슬람 사본에서도 책자본이 주류를 이루었다. 사본은 서(書)로서도 중시되지만 호화로운 사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본문의 장식 삽화나 표지의 장정이 회화*, 공예* 작품으로 독립시켜 취급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필사본은 15세기부터 인쇄본이 본격적으로 보급됨에 따라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