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 2 7

미 美 beauty(영)

좁은 의미로는 보통 미(아름다운 것, 고운 것)를 말하나, 넓은 의미로는 미적(美的)의 동의어로서 다른 여러 미적 범주도 포함하여 미적 현상의 모든 영역을 통하는 특수한 정신적 가치 내용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의 미는 경험적 사실에서는 매우 다양한 차이를 나타낸다. 그 고유의 특질이 가장 뚜렷하게 완전히 실현되는 것은 좁은 의미의 미에서이며, 이런 뜻에서 이를 순수미라고도 하므로 가치 내용으로서의 성질에 관해서는 어느 쪽의 미도 궁극적으로는 합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의 가치는 대상에 속하는 일정한 성상(性狀)이나 관계에 의존함과 동시에 우리들 자신의 의식 태도 또는 활동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주체와 객체와의 긴밀한 교호(交互)관계에서 성립하는 것이므로 그 본질에서는 미학상 여러 가지 해석이 시도되고 있다.
미의 주된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완결성-현실의 존재 관련에서 격리되어 그것 자신만으로 정리되어 소우주라고도 할 구조가 있을 것. 그러므로 사소한 변화에 따라서도 삽시간에 흐트러질 것 같은 ‘나약함’을 특징으로 할 것. ②조화성-직관과 감정, 법칙과 자유와 같은 서로 대립하는 계기가 동시에 긴밀히 융합 협조하고 있을 것. ③구상성(具象性) 또는 직관성-어떠한 내용도 감성적 현상에서 나타나며 직접 체험의 충실 위에서 얻어질 것. ④정관성(靜觀性)-우리들의 실생활의 욕망이나 이해의 이념을 초월하여 순수하게 대상 그 자체의 현상에 몰두하는 것. ⑤창조성-자아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창조적 형성의 활동에 의해 항상 새로운 개성적 형상이 산출되는 것. ⑥쾌감성-가끔 불쾌한 분자를 섞으면서도 전체로서는 항상 쾌감을 기조로 하는 것. 그러나 미는 단순한 관능적인 쾌감과는 달리 인격성의 심층에 투철한 정도의 ‘깊이’가 있어야 함이 전제된다.
한편 미학*에서는 미의 소재에 따라 자연의 현실적인 사물에서 발견되는 자연미와 예술적 산물에 귀속되는 예술미를 구별하고 또 형식미와 내용미를 나누어 다루는 경우도 있다.

미국 장면회화

미국 장면회화 美國場面繪畵
American Scene Painting(영)

192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서 1930년대까지 미국적인 삶의 정경과 풍경을 자연주의*적으로 묘사한 일련의 화가들의 작품을 지칭한다. 조직화된 운동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제1, 2차세계대전 사이에 유행한 아방가르드*와 추상 양식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시도한 미국 미술가들의 전반적인 경향 중 하나이다. 당시 미국 미술계를 독점하고 있던 모더니즘*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하였고, 제1차세계대전에 뒤따른 미국의 고립주의적 경향을 배경으로 사회적 내용이 담긴 사실주의*를 지향하였다. 20세기초 와이어트Andrew Wyeth(1917~ )나 기타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었던 현대 미국생활에 대한 사실적 묘사를 부활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던 국수주의적인 미술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장면회화 작가들은 도시보다는 시골이나 조그만 읍을 주제로 선택하였으며, 이러한 주제는 앤더슨Sherwood Anderson과 루이스Sinclair Lewis의 문학작품의 내용과 상통하는 면을 지니고 있었다.
대표적인 미국 장면화가로는 버치필드Charles E. Burchfield(1893~1967)와 호퍼Edward Hopper(1882~1967)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미국 생활의 황량함과 고독감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사실주의적인 양식을 채택함으로써 그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었다. 한편 미국의 중서부 촌락에 중심을 두고 보다 국수주의적인 입장에서 극단적인 경향을 취했던 벤턴Thomas Hart Benton(1889~1974), 우드Grant Wood(1892~1941), 커리John Steuart Curry(1897~1946) 등 지방주의*(Regionalism) 작가들도 이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추상화가협회

미국추상화가협회 美國抽象畵家協會
American Abstract Artists, AAA(영)

1936년 뉴욕에서 창립된 미국의 추상 화가와 조각가들의 단체. 추상화가 경시되었던 당시의 미국 회화 조류에 대해 자신들의 추상미술*을 적극적으로 보급하고 추상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결성된 전위 작가들의 모임이다. 초대 회장은 그린Balcomb Greene(1904~1990)이었으며, 창립회원에는 앨버스Josef Albers(1888~1976), 라인하트Ad Reinhardt(1913~1967), 볼로토스키Ilya Bolotowsky(1907~1981), 드 쿠닝Willem de Kooning(1904~1997), 폴록Jackson Pollock(1912~1956), 스미스David Smith(1906~1965)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37년 이래 매년 전시회를 열었으며, 그 밖에도 관련 서적의 발간, 강연회 등을 개최하여 추상미술의 보급에 정력을 쏟았다. 1940년에는 근대미술관(MoMA) 앞에서 미국 미술을 전시하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940년대 이후 추상미술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협회 자체의 활동은 다소 줄어들었으나, 1950년대에는 가입회원이 200명을 넘어서면서 왕성한 움직임을 전개하였다.

미국형 회화

미국형 회화 美國型繪畵
American Type Painting(영)

1955년 《파르티잔 리뷰Partisan Review》에 발표된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1909~1994)의 논문 제목. 여기에서 그린버그가 미국형 회화라고 지칭한 것은 추상표현주의*, 액션 페인팅*, 색면 회화*(Color Field painting) 등 제2차세계대전 후 뉴욕에서 주목받은 일련의 예술가들의 작업을 말한다. 호프만Hans Hofmann(1880~1966), 마더웰Robert Motherwell(1915~1991), 폴록Jackson Pollock(1912~1956), 스틸Clyfford Still(1904~1980), 뉴만Barnett Newman(1905~1970), 로스코Mark Rothko(1903~1970) 등 대부분의 모더니스트 화가들이 이러한 경향에 동조했다. 그린버그는 전통적으로 유럽 회화에 열등의식을 느껴온 미국 회화가 미국형 회화를 계기로 최초로 독자적인 발언을 하고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하였다.

→ ‘모더니스트 회화’ 참조

미나렛

미나렛 minaret(영) manara(아)

이슬람 신전에 부설된 높은 뾰족탑으로, 아랍어로 ‘등대’라는 뜻. 무아딘(muaddin)이라는 기도 시보원(祈禱時報員)이 하루에 다섯번씩 이 탑에 올라가 외침으로써 회교 신자들에게 예배 시간을 알려주었다. 지금은 사람이 아닌 기계인 기도시보계(祈禱時報係, muezzin)가 미나렛 위에 돌출된 발코니에 설치되어 있다. 예언자 마호메트가 살았던 당시에는 이슬람 사원 근처에서 가장 높은 지붕에 올라가 기도시간을 알렸다. 멀리서도 눈에 쉽게 띄는 미나렛은 이슬람교의 표지물로서 회교 사원에 부속되어 있는데, 한 사원에는 1~6개의 미나렛이 있다.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미나렛은 튀니지 알카이라완에 있는 것으로, 724~727년에 만들어졌으며 커다란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나렛의 형태와 구성은 매우 다양하다.

미노타우로스

미노타우로스 Minotaur(영)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소인 크레타의 전설적인 괴물. 그 명칭은 그리스어로 ‘미노스의 황소‘라는 뜻의 ‘Minotauros’에서 유래하였다. 고대 크레타의 황소 숭배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미노타우로스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제물로 쓰라고 보낸 눈처럼 흰 황소를 미노스 왕이 살려두자, 포세이돈은 약속을 어긴 벌로 미노스왕의 왕비인 파시파이를 황소와 사랑에 빠지게 했다. 미노스 왕은 그 사이에서 태어난 머리는 소, 몸은 인간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미궁(迷宮) 라비린토스에 가두어 두고 소년, 소녀들을 제물로 바쳤다. 그러나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가 왕의 딸 아드리아네의 도움을 받아 이 괴물을 처치하였다. ‘미노타우로마키아Mynotauromachia’라고 불리는 이 이야기는 그리스의 도기화에서부터 현대에 들어와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회화의 주제로 널리 쓰였다.

미니멀 아트

미니멀 아트 Minimal Art(영)

195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나타난 미술경향으로서 작가의 감정과 주관이 지배적인 추상표현주의*에 반하여 최소한의 조형 수단을 사용, 극도의 몰개성을 지향한다. 미니멀 아트라는 명칭은 1965년 1월 영국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볼하임Richard Wolheim이 뒤샹Marcel Duchamp(1887~1968), 말레비치Kasimir Malevich(1878~1935), 라인하트Ad Reinhardt(1913~1967),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1925~ ) 등의 작가를 논평한 동명의 에세이에서 따왔다. 미니멀 아트는 로즈Barbara Rose에 의해 ‘에이비시ABC 아트’로, 프리드Michael Fried에 의해서는 ‘리터럴 아트(Literalist Art)’로 명명되었으며, 이 밖에도 ‘차가운 미술(Cool Art)’ ‘환원적 미술’ ‘오브제 아트’ ‘프라이머리 스트럭처(Primary Structure)’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최소한, 극소의 미술’이라는 의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금욕적이리만큼 절제된 양식과 극도로 단순한 제작방식을 채택하여 미술 작품의 실재와 본질을 강조하였다.
미니멀 회화는 재현된 형상과 환영적인 회화의 가상 공간을 거부하고, 미니멀 조각은 역시 재현된 형상이나 받침대를 배제함으로써 작품을 하나의 오브제*로서 간주한다. 그러나 대표적인 미니멀리스트인 저드Donald Judd(1928~1994)가 1965년 《특수한 물체Specific Objects》에서 회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회화도 조각도 아닌 삼차원의 특수한 물체를 제안하였듯이, 실제로 미니멀 아트에 있어서 회화와 조각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모리스Robert Morris(1931~ )와 저드의 작품처럼 대부분의 미니멀 아트는 구성상 나눌 수 없는 단일한 형태를 취한다. 따라서 각 단위들 사이에 위계적 질서나 내부적 상관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전통적으로 은유나 상징체계가 작품의 내부에 존재한다는 가정을 거부하는 미니멀 아트는 그 의미를 외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다. 즉 공적인 공간에서의 경험을 유도함으로써 미니멀 아트는 실제 공간 속에서 관람자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한편 그 제작과정에서는 작가 개성의 흔적이나 손질이 가해지지 않으며 대신 공장에서 주문 생산된다. 이 때문에 미니멀 아트는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1909~1994)에 의해 비예술(non-art)에 근접한 것이며 새로움을 추구하는 ‘진기한 미술(novelty art)’의 극단적인 형태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1950년대에 추상표현주의가 그랬듯이 미니멀 아트 또한 1960년대 후반의 미술계를 주도한 대표적인 경향이었다. 그리고 미국 태생의 작가들에 의해 전적으로 주도된 최초의 국제적인 미술운동이기도 했으며, 멕시코와 일본에서는 모노파*와 같은 미니멀 아트의 아류가 등장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미니멀리스트로는 저드, 모리스, 르윗Sol Lewitt(1928~ ), 플래빈Dan Flavin(1933~ ), 스미스Tony Smith(1912~1980), 안드레Carl André(1935~ ), 세라Richard Serra(1939~ ), 마틴Agnes Martin(1908~ ), 마든Brice Marden(1938~ ) 등이 있다.

미니어처

미니어처 miniature(영, 프)

아주 작은 크기의 초상화*로서 목걸이 등의 장신구에 넣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서양의 성경 삽화(illumination), 특히 극채색(極彩色)으로 장식된 필사본* 그림이나 장식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원래 명칭은 서양 중세 사본의 각 장에서 첫머리를 장식하는 두문자(頭文字, initial letter)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붉은 색의 납 ‘미니움(鉛丹, minium)’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어원이 작다는 뜻의 ‘minute’로 잘못 알려지면서 17세기 이후 모든 종류의 사본 삽화에 적용되어 왔다.
오늘날 우리가 미니어처라고 부르는 것은 중세 시대의 ‘히스토리아(historia)’에 해당한다. 초상화용 미니어처는 중세 사본 삽화와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화 메달이라는 두 가지 전통이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17~18세기에는 에나멜* 기법의 미니어처가 유행하였으며, 아주 작고 세밀한 유채화나 애완용 회화, 의복의 장식, 보석 세공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사용되었다. 16세기초부터 융성하였던 미니어처는 사진이 등장하기 시작한 19세기 중반 이후에 소멸하였다.

미디어 아트

미디어 아트 Media Art(영)

미디어는 ‘매체*’를 뜻하는 미디엄의 복수형으로서 미디엄이 미술에서 작품의 재료를 의미한다면, 일반적으로 미디어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 매스미디어를 가리킨다. 즉 미디어 아트는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인 대중매체를 미술에 도입한 것으로서, 책이나 잡지, 신문,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비디오, 컴퓨터 등 대중에의 파급 효과가 큰 의사소통 수단의 형태를 빌려 제작된다. 1920년대에 전조를 보인 미디어 아트는 제1, 2차세계대전을 통한 대중매체의 기술적 발전과 매스컴 이론의 영향에 따라 1960년대에 대두하였고 197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미디어는 곧 메시지’라는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지적대로 미디어 아트는 매체 자체가 지닌 독특한 속성을 내세워 대중의 의식과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 미디어 아트의 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매스미디어에 의해 지배되는 대량소비사회의 면모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팝 아트*였다. 전직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타블로이드 사진을 이용하여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한 워홀Andy Warhol(1928~1987)이나, 대중만화*의 내용과 형태를 차용한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1923~1998)이 그 예이다. 그러나 미디어 아트는 대부분 여론 조작, 권력에의 봉사 같은 대중매체의 부정적인 효과를 비난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 예로 게릴라 걸스Geurrilla Girls는 여성의 성적 차별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포스터*로 제작하여 거리의 벽에 붙임으로써 사회의 숨겨진 비리를 폭로하는 언론인의 역할을 자처했고, 레빈Les Levine은 옥외 광고판을 사용하여 권력층에 의해 독점되는 매체의 속성을 고발하였다. 이러한 접근 방법들은 그간 대중매체의 무차별한 자극과 지대한 파급효과에 수동적으로 영향을 받아왔던 미술이 이제 미디어 아트라는 보다 적극적인 형식을 통해 매스미디어에 반응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미래주의

미래주의 未來主義 Futurism(영) Futurismo(이)

20세기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련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으로서 미술뿐 아니라, 시, 음악, 연극, 문학 등 예술 전반에 걸쳐 대두된 움직임이었다. 시인인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1876~1944)가 1909년 2월 20일자 파리의 일간지 《르 피가로Le Figaro》에 최초로 <미래주의 시(時) 선언>을 발표한 것이 효시가 되었다. 이듬해인 1910년 3월 8일 보치오니Umberto Boccioni(1882~1916), 카라Carlo Carra(1881~1966), 세베리니Gino Severini(1883~1966), 루솔로Luigi Russolo(1885~1947), 발라Giacomo Balla(1871~1958) 등 다섯 명의 화가들이 트리노의 키아레라 극장에서 3천 명의 관중 앞에서 <미래주의 화가 선언>을 공표하면서 미술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들은 “우리가 화폭 위에 재현하고 싶은 것은 역동적 세계의 고정된 한 순간이 아니라, 세계의 역동성 그 자체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일체의 과거를 청산하고 속도와 다이내믹한 힘이 넘치는 기계문명의 표현을 강력히 주장했다. 1912년에는 <미래주의 제2차 선언>과 보치오니에 의한 <미래주의 조각 선언>이 뒤를 이었다. 제2차 선언문에서는 회화의 고전적 기교를 공격하면서 이를 분리파* 미술의 피상적 모더니즘*이라고 명명하였다.
과거와 전통을 거부하고 대신 새로움과 젊음, 기계, 운동, 힘, 속도를 찬양하였던 미래주의 작가들은 “세계는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더욱 풍요로워졌다. 그것은 바로 속도의 아름다움이다. 달리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스 섬의 승리의 여신상보다 아름답다”고 말한 마리네티의 사상을 회화와 조각에서 실천할 것을 표명하였다. 특히 미래주의는 구상 회화에 움직임을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미(美)인 보편적 힘으로서의 다이나미즘*을 화면에서 구현하려고 시도하였다. 그 결과, 영국의 사진작가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1830~1904)와 프랑스의 생리학자 마레이Etienne-Jules Marey의 사진기술과 고속촬영 등 동시대의 과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공간 속에서의 다이내믹한 연속성을 포착함으로써 동시성(simultaneity)*을 실현하였다.
즉 공간과 시간 속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소리, 빛, 운동 등을 회화에 가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탈리아의 미래주의는 보치오니가 사망한 1916년 이후 지속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역동성과 동시성* 개념은 라리오노프Mikhail Larionov(1881~1964)나 곤차로바Natalia Goncharova(1881~1962), 말레비치Kasimir Malevich(1878~1935) 등의 러시아 작가들과 영국의 보티시즘*에 영향을 주었으며, 과격한 선동 기법과 우상파괴주의, 반전통의 정신은 다다*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