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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碑 bei(중)

중국에서 기원한 각석(刻石)의 일종이다. 고전의 해석에 의하면, 비의 기원에 두가지 계통이 있다. 하나는 종묘의 문 안에 세워 희생물(犧牲物)을 매어놓기 위한 것, 또 하나는 묘소에 세워서 관(棺)을 구덩이 아래로 내리는 것이다.
이러한 묘문의 비, 묘상의 비가 널빤지 형의 돌이 되고, 문장이 새겨지면서 비가 되었다. 시기는 후한대(後漢代)부터이고, 현재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한안 2년(143)의 〈북해 상경군비北海相景君碑〉이다. 최전성기의 비 양식인 한비(漢碑)는 비수(碑首)가 삼각형으로 뾰족한 규수(圭首)와 둥그런 원수(圓首) 두가지가 있고, 윗부분에 천(穿)이라 부르는 둥근 구멍과 원수에는 운(暈)이라고 부르는 홈이 파여 있다.
천은 희생물을 맨 흔적이고, 운은 활거(滑車)의 끈을 미끄럽게 한 흔적이라 한다. 뒤에 운의 밧줄이 용(龍)의 몸에 비유되고, 그 끝에 용의 머리를 나타낸 것을 이수(螭首)라 한다. 상부에 제액(題額)을 만드는 경우가 많고, 이것을 전서*로 썼으므로 전액(篆額)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네모꼴의 비받침을 방부(方趺)라 하고, 거북 모양을 한 것을 귀부*(龜趺)라 한다. 귀부가 아름다운 것으로는 남조 양의 〈안성강왕소수비安成康王蕭秀碑〉가 있다. 6세기말부터 불사에 관한 비는 비액(碑額)에 불합을 만들었고, 당비(唐碑)의 옆에는 당초문*이 많이 새겨져 있다.

비관계 회화

비관계 회화 非關係繪畵
non-relational art(영)

알로웨이Lawrence Alloway(1926~1990)에 따르면, 입체주의* 회화와 한스 호프만Hans Hofmann(1880~1966)의 풍부한 색채의 수채화처럼 관계적 회화는 형태의 크기에 상호 연관되는 위계 질서를 갖는다. 이런 회화들은 깊이의 효과를 이용한다. 이에 반해 비관계 회화는 1960년대 스텔라Frank Stella(1936~ )의 회화들처럼 하나의 획일적인 공간을 지니며 그림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으로 뻗어나가는 형태들에 의거하여 깊은 효과를 회피한다. 그 밖의 다른 화가들은 단일한 색채에 의존하거나 평면성에 의거함으로써 깊이를 회피한다.
비관계 회화에서는 내적인 관계가 결여되므로 캔버스의 외적 형태에 더 큰 중요성을 둔다. 비관계라는 표현은 미니멀 아트*에도 적용되어 왔는데 그것은 미니멀 조각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은 비재현적, 비상징적이며 그림 외부의 어떤 것과도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 ‘추상미술’ ‘미니멀 아트’ 참조

비구상

비구상 非具象
non-figurative(영) non-figuratif(프)

구체적인 대상의 재현을 거부한, 즉 추상적인 미술의 한 속성을 의미한다. 비구상미술이란 자연물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 미술인 추상미술*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추상은 기존의 미술이 갖는 재현적인 요소로부터 탈피하는 태도로부터 출발하는데, 특히 비구상미술은 어떤 대상을 작가의 의도적인 변형과 왜곡으로 인하여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표현한 것으로 비대상*미술과 구분된다. 예를 들자면 바젠Jean Bazaine이나 마네시에Alfred Manessier(1911~ ), 에스테브Maurice Esteve 등과 같이 구상적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점차 그것을 추상화해가는 태도를 비구상적이라고 말한다.

→ ‘비대상’ ‘추상미술’ 참조

비대상

비대상 非對象
non-objective(영)

작가가 처음부터 어떤 구체적인 재현 대상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려낸 것을 비대상미술이라고 한다. 이는 추상미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속성 중 하나로 비구상*과 다소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나 몬드리안Piet Mondrian(1872~1944)의 작품과 같이 처음부터 추상적 원리에 바탕을 두고 제작하는 비대상 미술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비구상미술보다 순수한 의미의 추상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 ‘비구상’ ‘추상미술’ 참조

비디오 아트

비디오 아트 Video Art(영)

비디오 즉 텔레비전을 매체로 하는 현대 미술의 한 경향. 비디오 아트는 1965년 당시 플럭서스* 미술가였던 백남준白南準이 소니의 최신 휴대용 비디오 카메라를 사용하여 최초의 비디오 작품을 제작하여 그로부터 몇 시간 뒤에 뉴욕의 그리니치빌리지에 있는 카페 아 고고Café à Go Go에서 상영함으로써 시작되었고, 196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확대되면서 수많은 작가들이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활동하고 있다.
비디오는 양식이 아니라 매체이며, 따라서 비디오 아트는 대략 다음과 같은 두 개의 분야로 나뉘어진다. 비디오 테이프 작품과 설치비디오가 그것이다. 설치 비디오는 비디오 장비, 주로 TV 수상기를 이용한 설치물로서 그 본질상 조각의 성격이 강하다. 백남준처럼 비디오 모니터와 화면을 재료로 이용한 작품이며, 일반적으로 여러 대에서 수십, 수백대의 TV 수상기를 이용하여 작품을 꾸미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설치된 수상기에 다큐멘터리 이미지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실험적 이미지를 녹화하여 재생할 경우, 비디오 테이프와 설치 비디오의 혼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설치 비디오는 비디오를 새로운 매체로 파악하는 측면이 약하며 오히려 비디오 테이프 작업이 비디오 아트의 가능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분야이다. 비디오 테이프 작품이란 비디오 테이프의 내용을 만드는 것에 더 주목하는 것으로서 다큐멘터리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우와 실험적인 이미지를 사용하는 경우로 나뉜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비디오 테이프들에는 형태와 색의 변화, 율동 등 기계적 아름다움이나 작가 개인의 미묘한 심리 상태에 집중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어서 현대 미술을 더욱 난해하게 만들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비디오 테이프 작업을 중심으로 하되 그것을 설치 형식으로 제시하는 형태를 자주 볼 수 있다.
비디오 아트는 미술이 대중 문화의 위세에 눌리자 그 반격이자 대안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분야이다.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작과 상영이 편리하며 영화와 같이 대자본에 종속될 염려가 없다는 점, 그리고 특히 대중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담아 내기에 적절한 도구라는 점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비디오 아트는 상업 TV의 전반적인 기술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업 TV의 기본적 원칙들의 상당 부분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비디오 미술가들은 커뮤니케이션과 대중 미학, 전자기술의 잠재성과 그 진보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면서 동시에 현대 사회의 대중에게 가장 친밀한 매체인 비디오를 선택한 것이다. 시청자에 대해 TV가 갖는 직접성과 단순성, 강한 영향력 등은 비디오 아트가 하나의 예술 형식으로서 대중적이며 효과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신케 한다.

→ ‘비디오 조각’ 참조

비디오 조각

비디오 조각 video sculpture(영)

TV 수상기를 재료로 하여 영상 및 음향과 함께 사용한 조형 작품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조각에 비디오 카메라와 모니터를 부착하거나 이러한 장치들과 함께 놓여 있다. 그러므로 비디오 장비를 제거하면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도 보여진다. 비디오 아트*에서 비디오 조각과 설치 비디오는 두 요소가 흔히 혼합되어서 나타나기 때문에 그 구분이 쉽지 않다.
비디오 조각의 경우 비디오 장비를 제거해도 조각의 형태가 남아 있지만, 설치 비디오는 TV 수상기를 제거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비디오 조각은 전통적인 조각과는 달리 강한 견인력을 가진다는 장점이 있다. 모니터가 장착되었으므로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화면에 주목한 관람객들이 모니터 안으로 흡인되기 때문이다.
즉 관객은 일반 조각처럼 그냥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비디오 앞으로 이끌려 가도록 유도되어지는 것이다. 1970년 백남준은 자신이 개발한 신시사이저를 이용하여 최초의 비디오 조각을 제작하였으며, 그의 아내이자 비디오 미술가인 구보타 시게코가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에 대한 경의의 표현으로 바쳤던 <뒤샹피아나> 연작에 비디오 조각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었다.

→ ‘비디오 아트’ 참조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 毘盧遮羅佛
Vairocana(범)

불교의 진리를 부처로 신격화한 법신(法身). ‘광명이 두루 비친다’라는 뜻으로 부처의 가장 궁극적인 모습(佛身)의 진신(眞身). 비로사나(毘盧舍那), 노사나(盧舍那)라고도 한다.
《화엄경華嚴經》의 주존불로서, 태양신을 이상화한 것으로 모든 세계를 포용한다고 한다. 밀교(密敎)에서의 대일여래(大日如來)와 동일한 이름으로, 이것을 전개시킨 것이 법신불(法身佛)이다. 그의 불정토(佛淨土)를 ‘연화장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라 하고, 그 세계에는 여러 종류의 무수한 수미산세계(須彌山世界)가 있고, 각 세계에는 화불(化佛)이 교화(敎化)한다고 한다. 형상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로 배치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노사나불과 석가불을 좌우에 모시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는 통일신라 이후 특히 9세기 중엽경 유행했으며, 현존 최고(最古)의 비로자나불상은 ‘영태2년명永泰二年銘’(766)이라는 명문*을 가진 경남 산청군 내원사 소장의 석조 비로자나불상이다. 그 밖에 대표적인 예로는 〈보림사寶林寺 철조비로자나불상〉 〈도피안사到彼岸寺 철조비로자나불상〉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으로 대적광전(大寂光殿, 大光明殿)이나 비로전(毘盧殿)이 있는데, 비로자나불을 중앙 본존으로 모시고 노사나불과 석가불을 좌우 협시불로 배치하는 것이 통례이다.

비마나

비마나 vimāna(범)

힌두 사원*에서 시바*신의 상징인 링가*나 혹은 다른 힌두교의 신상*들이 봉안되는 성소(聖所)를 가리키며 평면은 정방형이다. 오리사 지역에서는 데울*(deu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마나의 위쪽에 솟은 높은 탑의 형태에 따라 힌두 사원은 북방 형식과 남방 형식으로 구분된다.
비마나는 원래 신을 태우는 수레를 의미한다. 힌두 사원 중 초기의 예로는 남인도 타밀 지방의 마말라푸람Māmallapuram에 남아 있는 5개의 라타rathas(수레, 성전)를 들 수 있다. 이 사원들은 만다파*가 없는 비교적 간단한 형식이다. 그렇지만 비마나를 둘러 싼 요도(繞道)가 있는 형식, 세 방향으로 발코니가 튀어 나온 형식, 외벽에 여러 개의 작은 사당을 붙인 형식 등도 있다.

→ ‘힌두 사원’ 참조

비물질화

비물질화 非物質化
non-materialization(영)

형식주의 모더니즘*에 뒤이어 미니멀 아트*의 강력한 물결이 수그러든 뒤 1970년대에는 개념 미술*,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등 비물질의 미술이 주도했다. 20세기 미술의 비물질화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물질적 요소를 비물질적인 실체로 대치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정신성을 지향함으로써 물질을 거부하는 경향이다. 리파드Lucy R. Lippard는 현대미술에서 비물질화 경향이 물질을 에너지와 시간, 움직임으로 대치하는 ‘움직임으로서의 미술’과 물질을 거부하고 이를 관념으로 전도시킨 ‘관념으로서의 미술’의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하였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퍼포먼스나 키네틱 아트* 같은 움직이는 미술이라면, 후자의 예는 개념 미술이다. 클랭Yves Klein(1928~1962)은 물질인 마티에르*의 탐구를 추구한 앵포르멜* 미학에 대한 비판으로 비물질화를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파랑은 그림물감이 아니라 파랑이라는 비물질이다. 그는 작품 제작에 있어서 유화 물감의 사용을 거부했는데 안료 자체가 회화를 비물질화하는데 부적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년에 클랭은 불, 물, 공기와 같은 자연이나 우주의 근원적인 것을 추구했는데 이것 역시 작품을 물질로서 보는 일반적인 회화 관념에서 탈피하여 영원한 비물질적 회화를 지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백서

비백서 飛白書

일종의 특수한 서체. 중국 동한(東漢) 영제靈帝때 채옹蔡邕(차이 용)이 홍도문(鴻都門)을 장식하는 장인(匠人)들이 백분(白粉)을 쓸어내는 빗자루를 이용하여 글자를 쓰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어 이를 창시했다고 전한다. 그어진 필획이 끊일 듯 이어지는 듯 하는 가운데 속도감 있는 흰 여백이 남기 때문에 비백이라 불리는 이 서법은 필획의 속도감과 역동적 힘, 생명력이 특징이다.
한말(漢末)과 위초(魏初)에 관청과 궁궐의 제서(題書)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고 당唐, 송宋에 이르러서는 어제비문(御製碑文) 역시 이 서법으로 제액(題額)된 것이 많았다. 당대(唐代)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승선태자비升仙太子碑〉는 현존하는 비백서의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