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관
석관 石棺
sarcophagus(라, 영)
사르코파구스(sarcophagus)는 고대 그리스*, 라틴인들이 조각한 돌이나 테라코타*로 된 관에 붙인 명칭. 플리니Pliny(c.23~79)에 따르면, ‘살을 먹어 치운다 lithos sarcophagos’는 뜻을 가진 이 명칭은 시신을 분해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점판암으로 관을 만들거나 관 둘레를 두르던 관습에서 나왔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3000년대부터 목제, 도제관을 사용하였으나, 석관은 아시리아* 제국 때에야 사용되었다. 아슈르에서 출토된 기원전 9세기의 석관들은 비문에 의하여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것으로 판명되었으나 장식은 없었다.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7세기부터 석관을 만들었고 기원전 6세기부터는 오리엔트의 영향으로 건조물을 모방한 모뉴멘털적인 석관도 출현한다. 기원전 4세기 중기 이후의 헬레니즘* 왕국 동부에서는 사면에 정교한 부조*장식이 덮이고 색이 선명하게 칠해진 석관이 나타났다. 이것은 후에 서부에서 발달한 삼면에만 조각을 한 ‘로마식’과 구별하여 ‘그리스식’이라고 부른다.
기원전 5세기부터 서기 1세기까지 이탈리아의 서부 에트루리아 지방의 상류층에서는 돌, 설화석고*, 테라코타 등으로 석관을 만들었다. 이 석관의 특징은 한쪽 면에만 부조를 했다는 것과 누워있는 형태의 죽은 사람의 모습을 관 뚜껑에 조각했다는 것으로, 이는 훗날 로마*와 초기 기독교 미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기원전 5세기부터 서기 1세기말 또는 2세기초까지의 로마에서는 화장 풍습이 있어 매장용 석관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트로이 시대부터 로마와 이탈리아에서도 매장이 증가해 3세기 중기에는 널리 퍼졌다. 그리스 본토에서 시작된 소위 ‘아티카식’ 석관이라 하는 것은 사면에 신화의 장면이나 화환이 조각되어 있고, 사자(死者) 형상의 부조와 정교한 관뚜껑 장식을 특징으로 하며 2~3세기에 서쪽 지방으로 전래되었다.
3세기의 기독교 석관은 조각 등에서 부활과 구원의 주제가 보일 뿐 이교도의 것과 양식상의 차이는 없다. 4세기경에는 아시아식에 기초한 작은 기둥 사이에 인물을 깊게 부조한 ‘기둥식’ 석관이 유행하였으며, 5세기경 기독교 석관에는 고전 그리스 전통이 부활한 것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석관은 그 표면에 신화, 전투, 꽃모양 장식 등이 모티브*로 사용된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공적활동의 모습이 새겨지거나 비문이 있는 경우도 많아 고고학, 미술사*, 종교, 사상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석관도 그 도상*을 제정기의 석관장식 부조에서 이어받은 경우가 많으며 중세 이후에도 장식 모티브*로 계승되어 르네상스의 조각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