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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화

소경화 小景畵

동양화에서 산수화*를 그리는 한 형식. 산수경관을 크게 잡아 그린 산수화에 비해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들이나 물가의 비교적 협소한 경관으로 국한시킨 그림이다. 흔히 물가에 오리나 기러기가 등장하여 화조화*와도 관계가 깊다. 이 형식은 당대(唐代)에 시작되어 북송北宋 초기에 혜숭惠崇(후에이 츠옹)에 의해 양식적으로 정리되어 ‘혜숭소경(惠崇小景)’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후 남송南宋 초기의 조영양趙令穰(자오 링르앙)에 의해 한층 발전하여 남송 원체산수화풍(院體山水畵風)의 성립에도 영향을 미쳤다. 소경화조(小景花鳥), 소경묵죽(小景墨竹)과 같은 화제도 그려지고 있다.

소로수장

소로수장

도리*나 장여*의 밑에 소로를 받쳐서 장식한 구조로, 주로 중, 남부지방의 상류주택에 사용되었으나 조선 말기에는 서울과 중부지방의 중류주택에도 장식용으로 유행하였다.

소묘

소묘 素描 drawing(영) dessin(프)

표현이나 형태를 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로 선을 사용해 이미지를 그려내는 기술로서,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모든 예술의 기초를 형성한다. 밑그림이라고도 하며, 프랑스어로는 건축의 도면, 도안 등의 뜻도 포함한다. 제작의 목적이나 동기에 따라 크로키*, 스케치*, 에스키스*, 바탕그림, 에보슈*, 카르통*, 에튀드* 등의 명칭이 쓰이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 공예가들은 질그릇 조각 위에 붓으로 독자적인 스케치를 했다. 그러나 고대와 중세에는 스케치를 단순히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겼고 또 당시의 엄격한 관습이 예비 창조의 범위를 제한하였기 때문에 거의 그려지지 않아, 중세에 소묘의 기능은 주로 공방용의 패턴들에 한정되었다. 지오토Giotto(1266~1337) 이후 자연주의의 발생은 좀더 복잡한 밑그림 기술을 요하게 되었고, 14세기 이후 출현한 최초의 독립적인 소묘는 흰색으로 강조점을 둔 에칭*으로, 섬세한 모델링*을 위해 바탕칠이 된 종이 위에 그려졌다.
그 당시 사용되었던 다양한 소묘 기법은 첸니니Cennino Cennini(c.1360~1440)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는 도제 훈련에 있어서 소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소묘를 회화에 입문하는 ‘개선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소묘가 예술의 표현수단으로서 최초로 독자적인 위치를 확립한 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의 작품에서였다. 그의 수많은 소묘들은 예술적이고 과학적인 창조물들을 광범위하고 풍부하게 보여준다. 예비 스케치를 새로운 실험 분야로 본 그의 개념은 라파엘로Raffaello(1483~1520)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소묘의 발전은 18세기에 들어와 거장들의 위조품 드로잉들이 나돌 만큼 수장가들의 수집 대상이 되었다. 19세기에는 앵그르Jean-Auguste Dominique Ingres(1780~1867)를 위시한 신고전주의자가 소묘의 중요성과 기능을 강조한 것에 비하여 색채를 강조한 낭만주의*자들과 인상주의*자들은 비교적 소묘를 부수적인 것으로 이용하였다. 반 고흐Vicent van Gogh(1853~1890)는 큰 갈대펜을 사용하여 선의 표현적 특질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으며, 로댕Auguste Rodin(1840~1917)은 20세기 소묘의 개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대담한 소묘에서부터 모델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한 자유로운 기법을 보여주었다. 이 때부터 데스피오Charles Despiau(1874~1946), 마이욜Aristide Maillol(1861~1944) 등과 같은 많은 조각가들도 훌륭한 소묘를 제작하였다.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 클레Paul Klee(1879~1940) 등을 비롯한 근현대 미술의 거장들도 독창적인 소묘들을 통해 드로잉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였다. 20세기의 소묘는 추상화의 경향에 따라 점차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성격이 강조되었다.

소박 화가

소박 화가 素朴畵家
peintres naifs(프)

화가로서의 전문적인 정식 미술교육이나 훈련과정을 받지 못한 20세기초 유럽의 아마추어 화가들을 가리킨다. 루소Henri Rousseau(1577~1640)와 세라핀Séraphine(1896~1942)을 발굴한 우데Wilhelm Uhde(1874~1947)에 의하여 근대 회화에 있어서 독특한 영역의 하나로 처음 개념이 세워졌다. 이들은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대부분 비직업적인 화가로서 그 작품은 자연발생적인 솔직함과 꾸밈이나 기교 없는 단순함을 특징으로 한다. 문명적인 세련된 기교에 등을 돌린 소박 화가들은 기교 이전의 순수한 즐거움과 본능으로 거의 독학에 의해 미술을 배우며 자연발생적인 소박함과 치졸함을 특징으로 한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단순하고 즉흥적으로 보이므로 아동화나 정신병자의 작품과 유사한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많은 소박 화가들의 작품은 미술사적 전통에 입각하고 있으며 놀라울 정도의 수준의 예술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소박화파의 발단은 원시주의와 무의식의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데 흥미를 보인 모더니즘*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1880~1918)와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 등의 전위미술 작가들이 무명 화가인 루소의 그림에서 소박한 미에 주목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프리미티브 아트(primitive art)’ 혹은 ‘나이브 아트*(naive art)’로도 불린다. 그러나 특정한 지역의 역사적 산물인 ‘민속미술*(folk art)’의 개념과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 ‘민속미술’ 참조

소반

소반 小盤

음식을 먹기 위한 한국 전래의 평좌식(平座式) 식탁의 총칭으로 현재는 상(床)이라 한다. 《계림유사鷄林類事》에서는 식상(食床),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는 ‘식안(食案)’ ‘원반(圓盤)’ ‘찬반(饌盤)’ 등의 용어가 보이나 19세기 이후에는 ‘반(槃)’ ‘수반(手槃)’ ‘소반’ ‘반상’ 등으로 사용되었다. 한국 전통적으로 상차림이 1인 1상이어서 상이 많이 필요했고 상의 종류도 다양했다. 잔치 등에 사용되어 빙 둘러앉아 먹던 교자상, 제사에 사용되던 제상, 그리고 책상 등 여러 가지이다. 오랫동안 지방마다 제작기 독특한 형태로 만들어서 지방색이 두드러진다. 나주반은 간결하고 다리가 밋밋하며 다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대를 끼운 것이 특징이다. 해주반은 양 다리를 판으로 대고 변죽도 통판에서 파낸 것이다. 통영반은 개다리나 죽절의 다리가 특징이다.

소상도

소상도 瀟湘圖

산수화*의 한 화제(畵題). 소상이란 중국 호남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의 남쪽에 위치한 소수瀟水와 상수湘水가 합류하는 주변 지역을 말한다. 예부터 소상은 뛰어난 경치로 인해 시인 묵객들이 끊임없이 찾아들었다. 따라서 소상의 자연을 주제로 한 그림이 많이 그려지게 되었는데, 이를 소상도라고 한다. 이성파(李成派) 문인화가 송적宋迪(쏭 띠)이 북송(北宋, 1063) 때 이곳을 방문하여 그린 이후 산수화의 화제로서 성립했다는 설과 송적 이후 11세기말에서 12세기 초에 나타난 화제였다고 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안개의 어슴프레한 빛 아래에 전개되는 소상의 자연을 8개의 주제로 나누어 그린 것을 특히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라고 한다. 여덟 가지 승경이란 산시청람(山市晴嵐), 어촌석조(漁村夕照), 원포귀범(遠浦歸帆), 소상야우(瀟湘夜雨), 연사만종(煙寺晩鐘), 동정추월(洞庭秋月), 평사낙안(平沙落雁), 강천모설(江天暮雪)이다. 전해지는 작품으로는 오대(五代) 남당南唐 때의 동원董源(똥 위앤)이 그린 <소상도>(북경 고궁박물원 소장)가 유명하다. 동원은 강남산수화(江南山水畵)로도 유명한데, 이 그림에서 강남지방의 풍정을 특히 잘 나타내었다고 평가된다. 이 외에도 남송南宋 초기 왕홍王洪(우앙 홍)이 그린 <소상팔경도권>(프린스턴 대학 소장)이나 12세기 중반의 동원 거연파(董巨派)의 무명화가 이씨(李氏)가 그린 <소상와유도권瀟湘臥遊圖卷>(도쿄 국립박물관 소장), 목계牧谿(무 시)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소상팔경도권>(東京 根津美術館 소장)이 유명하다.

소송파

소송파 蘇松派

명대(明代) 후기에 화정華亭(상해시上海市 송강松江)에 출현했던 한 화파. 조좌趙左(자오 쭈어)를 시조로 하여, 먹을 아끼고 화면 구상에 신중을 기하는 필치가 특징이다. 만력 연간(萬曆, 1573~1619)에 오파*화가를 많이 배출한 화정 지방에서 동기창董其昌(똥 치츠앙, 1555~1636) 등의 송강파*, 고정의顧正誼(꾸 주엉이) 등의 화정파*와, 심사충沈士充(선 스충) 등의 운간파*와 비견되는 오파의 한 지류이다.

소재

소재 素材 Stoff(독)

①넒은 의미로는 창작의 결과가 되는 예술작품에 대하여 그 원료가 되는 일체를 말한다. ②예술의 표현수단으로 쓰이는 감각적 재료, 즉 매개체. 예를 들면 조각에 있어서는 대리석, 청동 같은 것을 말하며, 문예에서는 언어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소전

소전 小篆

대전*(大篆)과 대칭되는 서체. ‘진전(秦篆)’이라고도 한다. 진시황秦始皇이 중국을 통일한 후 문자통일을 도모하기 위해 이사李斯(리 쓰) 등에게 명하여 제작하였다. 글자체는 주문*(寅文)을 간략화하여 균일(均一)하고 정제(整齊)된 특징을 가지며 이 때문에 한자의 규범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현존하는 소전의 대표적 각석으로는 〈태산각석泰山刻石〉 〈낭아대각석琅玡臺刻石〉 등이 있으며 소전의 대가로는 당대(唐代) 이양빙李陽啣(리 이앙삥), 오대(五代) 서현徐鉉(쉬 슈앤), 청대(淸代) 등석여鄧石如(덩 스루) 등이 있다.

소조

소조 塑造 modelling(영)

조각에서 모형에 점토 등으로 살을 덧붙여 재료에 의한 삼차원적인 표현을 주는 조형 기법. 회화에서는 이차원의 평면상에 삼차원적 형태의 입체감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조각에서 대강의 구성이 끝난 다음의 성형 또는 성형법을 말한다. 소조의 재료는 오랫동안 유연한 상태를 지속할 수 있어야 하며 자유롭고 섬세한 표현에 적합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완성을 위해 부드러운 상태로 장시간 작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가장 일반적인 주요 재료로는 점토와 왁스를 들 수 있다. 점토는 한 모형을 어떤 다른 재료로 바꿀 수 있는 일시적인 소조 매체로 사용되거나 완성된 작품의 마지막 매체로서 사용된다. 조각가의 작업실에서 흔히 사용되는 왁스는 밀랍*이나 석랍(paraffin wax)의 대용물인데 정확하고 민감한 부분까지 표현할 수 있어 특히 초상화*, 데드 마스크*, 실물의 모습을 그대로 본뜨기 위한 재료로 사용된다. 입체를 새겨 넣어 형을 만드는 목조와 석조에 비해, 소조는 조형 소재를 손으로 빚어 형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작품의 크기와 요철을 붙이는 방법이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