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
수묵화 水墨畵
채색을 하지 않고 먹물로만 그리는 동양회화 고유의 양식. 백묘*화를 토대로 발전한 수법. ‘수묵’이라는 말은 유상劉商(리우 상, 8세기 후반)의 시에서 보이고, 당말오대(唐末五代)에 활동했던 형호荊浩(싱 하오)의 《필법기*筆法記》에 나타나는 ‘수운묵장(水暈墨章)’의 약칭이라고도 한다. 백화*가 선 위주인데 반하여, 묵화*는 면 위주이고, 먹의 번짐으로 농담(명암)을 나타낸다. 그 용묵법(用墨法)에는 크게 파묵*, 발묵*이 있는데, 이 두 기법은 모두 먹의 성질을 이용하여 화가가 의도하지 못한 우연성의 효과를 얻게 되는 특징이 있어 사의*(寫意)를 중시하는 전위적인 일품화(逸品畵)로 전개되었다.
수묵화는 성당(盛唐)시대에 산수화*가 자연주의적 경향으로 변화하던 시기에 성립되었고, 특히 산수화의 나무와 암석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했다. 기존의 채색위주의 화풍에서 수묵으로의 일대전환은 장자莊子가 제기한 “소박(素朴)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과 부합된다. 《필법기》에서 형호는 “무릇 채색의 훌륭함은 예부터 있었지만, 수묵화는 우리 당대에 처음 흥기한 것이다(隨類賦彩, 自古有能, 如水暈墨章, 興吾唐代)”라고 서술한 후 “진실한 생각이 뛰어나서 오채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眞思卓然, 不貴五彩)…묵의 용법이 심오한 데까지 도달한다(用墨獨得玄門)”라는 말로 수묵화의 우위성을 강조하였다. 수묵화는 대상의 색채와 깊고 얕음에 근거하여 용묵을 변화시킴으로써 묵법이 실제로 색채와 같은 효과를 내야 한다고 주장되었다.
그 후 오대(五代)에 이르면 도석인물 부문에 진출한 발묵계 수묵화가 특징적이고, 북송北宋 말기에는 사대부 화가에 의한 묵죽*, 묵매*를 비롯해 이른바 미법산수*가 나타났다. 남송南宋에서는 양해梁楷(량 카이), 목계牧谿(무 시), 옥간玉澗(위 지앤) 등에 의해 도석인물 이외에 산수, 화훼, 원숭이, 학, 노안(蘆雁) 등을 주제로 삼은 수묵화의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이 흐름은 원대(元代)에도 계승되어 원사대가*에 의해 고도의 표현기술이 완성되었다. 이들 수묵화의 영향은 명대(明代) 서위徐渭(쉬 웨이), 청대(淸代)의 팔대산인八大山人(빠따르산르언)에게로 이어졌으며 양주화파와 해상파에까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도 고려시대의 수묵화가 전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들여 나름대로의 양식으로 완성한 조선식의 수묵화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