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기사파
청기사파 靑騎士派
Der Blaue Reiter(독)
다리파*와 함께 독일 표현주의의 주요한 유파로서, 이 명칭은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와 마르크Franz Marc가 1912년에 피퍼Piper 서점에서 간행한 잡지 《청기사》에서 유래됐다. 이 잡지는 1911년 6월부터 계획되고 9월에 계약이 체결되었으며 그해 가을에 작가와 음악가 등 공동 협조자들의 도움을 받아 편집 작업을 했다.
1909년에 만들어진 뮌헨의 신미술가협회*가 원류지만, 위 사람 외에 야블렌스키Alexej von Jawlensky(1864~1941), 뮌터Gabriel Münter, 클레Paul Klee(1879~1940), 쿠빈Alfred Kubin, 막케August Macke 등이 포함되며, 후에는 프랑스의 브라크Georges Braque(1892~1963), 루소Henri Rousseau(1577~1640) 등의 작품도 독일에 소개되어, 범(汎) 유럽적인 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1911년 12월 8일 탄하우저Thanhauser 화랑에서 선언문과 전시를 주관하고, 청기사파라는 동일 명칭을 사용했다.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에 의해 청기사파는 자연 해산되었고, 막케는 1914년에, 마르크는 16년에 전사했다. 이 파의 경향은 색채에 상징적인 의미를 주고, 독일 고대의 낭만적 심성을 화면에 형상화하는 것으로, 제작자의 내면 표현을 존중함으로써 추상화로의 길을 가게 된다.
단 괴기적이고 환상적인 내용을 담은 오스트리아 쿠빈의 화풍은 전반적인 청기사파의 작가들에 비해 이색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룹은 칸딘스키의 정신성, 마르크의 종교성에 의해 주도되어 추상표현주의의 모태가 되었으며, 이들의 작품은 최초의 추상이라 평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