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色 color(영)
빛의 스펙트럼의 파장에 의해 식별할 수 있는 시감각(視感覺)의 특성으로 시각의 기본적 요소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분간할 수 있는 색의 가짓수는 몇 백만 개나 되지만, 색은 크게 흰색, 회색, 검정 계통에 속하는 ‘무채색(無彩色, achromatic color)’과 무채색 이외의 모든 색으로 빨강, 주황, 노랑, 녹색, 파랑, 보라 등 밝거나(明) 어둡거나(暗) 맑거나(淸) 탁한(濁) 색 전부를 포함하는 ‘유채색(有彩色, chromatic color)’으로 나눌 수 있다. 눈의 망막에는 추상체(錐狀體)와 간상체(桿狀體)라는 두 종류의 시세포가 있는데, 밝은 빛에서는 추상체가 작용하여 색 지각을 만들지만, 어두울 때는 간상체가 작용하여 흑백 사진과 같은 무채색의 시각을 만든다.
모든 색채는 독자적인 세 가지 차원을 지니고 있는데, 색상, 채도*, 명도*가 그것이다. 색상*(色相, hue)은 유채색을 종류별로 나누는 단서가 되는 색의 기미를 말한다. 색환에서 광파에 따라 순차적으로 배열된 색채의 등급으로서 붉은 색 계통의 광파가 가장 길고 녹색에서 보라로 갈수록 짧아진다. 이 색상의 자연적인 순환 질서 안에서 가장 먼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 보는 관계의 색채들을 보색*이라고 한다. 보색 관계의 두 색상이 나란히 병치될 경우, 상대 색깔을 가장 선명하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한 색깔의 이미지가 잔상으로 남을 경우에 이 잔상의 색도 원래 색의 보색에 해당한다.
채도(彩度, saturation)는 노출된 색의 총량이라는 의미에서 색채의 순수성을 말한다. 따라서 채도의 높낮이는 색채의 탁도(濁度)를 의미하며, 동일 색상의 청색(淸色) 가운데서도 가장 채도가 높은 색을 그 색상의 순색(純色)이라고 한다. 무채색에는 색상과 채도가 없고 명도만이 있다. 명도(明度, brightness)는 색채의 밝은 정도를 의미한다. 가장 밝은 흰색과 가장 어두운 흑색을 양단으로 하여 그 사이에 밝기가 다른 여러 가지 회색을 명도 순으로 배열하면 무채색의 명도 단계가 이루어지는데 다른 유채색의 명도도 이 명도 단계와 비교하여 결정된다. 이러한 세 가지 속성의 관계는 색입체(色立體, color solid)를 통해 한눈에 볼 수 있다. 색 입체의 중심 축에는 명도가, 주위에는 색상이 있으며, 중심 축과 원주를 연결하는 선상에 채도가 있어 모든 색들이 그 안에서 계통적으로 배열된다. 색입체를 세로로 자르면 등색상면(等色相面)이 나타나고 수평으로 자르면 등명도면(等明度面)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외에도 색채 경험상의 속성을 나타내는 용어로는 광도(光度, brilliance), 순도(純度, chroma), 색조(色調, tone), 농담(濃淡, shade), 틴트*(tint, 연한 색조), 조도(照度, intensity)가 있다. 과학적인 표색 방법으로 먼셀 표색계, 오스트발트 표색계, CIE(국제조명위원회) 표색계가 흔히 사용된다.
색채 연구는 심리학, 물리학, 생리학 등의 분야에서 행해진다. 심리학적 연구에서의 색채는 시각체험의 한 요소이며, 가장 넓은 의미에서 색채 개념은 시, 공간적 형상들을 떼내어 버릴 때에 남는 시각체험상의 국면으로 정의된다. 일상생활에서 색채는 주변 세계 내에서 존재하는 물체들의 속성으로 간주되어 사물 인식에 도움을 주는 단서가 된다. 그러나 대개 사람들은 색채를 특별한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고 보이는 대로 대하며, 사실상 미술에서도 색채의 본성에 관심을 두는 태도는 오래되지 않았다.
그림의 역사에서 보면 색채는 형태의 본질적인 도형에 덧붙여진 장식 이상의 것으로 생각되지 못했다. 18세기말에 칸트Immanuel Kant도 《판단력 비판》에서 본질적인 것은 도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점차 미술 및 의류직물, 실내장식 등에서 색채의 미묘하고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으며, 현대 미술에서 색채는 형태를 덮고 있는 것이라기보다 그 자체로서 실재하는 구조로서 파악하는 태도가 확산되었다.
시각 체험에서 색채는 세 가지 양상으로 출현하는데, 그것은 프리즘을 통하여 시각에 정면으로 보여지는 ‘감광막 색채(film color)’, 투명하거나 부피가 있는 유색 물체를 통해 보여지는 ‘체적 색채(volume color)’, 사물의 실제 특질로서 표면 질감으로 보여지는 ‘표면 색채(surface color)’가 그것이다. 실제로 화가들이 구사하는 기술의 일부는 표면색채만을 가지고 있는 안료를 수단으로 하여 색채의 다른 양상들을 재현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평평한 화면을 인식하는 동시에 회화 공간 속에 묘사된 물체들을 포착하는 미적 체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대의 추상조각에서는 투명한 재료를 이용해 체적색채를 활용하곤 한다.
심리학에서는 색채가 갖는 따스하거나 차가운 느낌, 무게와 크기 그리고 색채에 대해 인간이 갖는 정서적인 반응과 같이 색채의 부차적인 성질도 연구 과제가 된다. 19세기 중반 페히너Gustar Theodor Fechner 이래 실험미학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적색이나 황색 계통은 따뜻한 느낌을 주며, 녹색이나 청색 계통은 차가운 느낌을 준다. 색에 대한 냉온(冷溫)의 느낌은 명도나 채도보다는 색상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또한 난색계는 진출의 느낌을, 한색계는 후퇴의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느낌은 색상보다는 명도에서 기인한다. 그 밖에 옅은 색이 짙은 색에 비해 가볍고 더 확대되어 보이는 경향이 있다. 물리학적 견지에서 색채는 조명과 더불어 색채 경험을 산출하는 자극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물리학적 접근을 통한 색채연구는 광선을 매개로 해서 색채의 혼합에 따른 현상들을 연구한다.
색채에 대한 정신물리학적 연구는 색채가 자극을 주는 상황에 대한 물리적 연구와 시각적 체험 내에서 인간이 보이는 주관적 반응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를 결합하여 진행되는데, 이는 미술의 색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본질적인 연구방법이다. 형태심리학에서는 한 색채가 다른 색채와 관련해서 어떻게 위치하는가에 따라 색상, 채도, 명도가 받게 되는 영향의 측면에서 광범위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공간적인 인지 역시 색채의 명도와 채도에 영향을 주며, 우리가 익숙한 사물의 색은 조명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비교적 독자적인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시각에 의해 포착된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