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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화

선종화 禪宗畵

도석화*의 한 종류로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의 이념이나 그와 관계되는 소재를 택한 그림. 말로 설명하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깨닫는 선종의 정신세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승려들이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이다. 이것이 사대부의 사유방식과 연계되면서 종교화로서보다 감상화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전통적인 불교 회화와는 달리 수묵을 사용하여 감필묘*(減筆描)의 간일(簡逸)한 화풍을 이루는 게 상례이다. 특히 달마達磨를 비롯해 한산寒山, 습득拾得, 나한羅漢, 출산석가(出山釋迦) 등의 인물화*와 십우도(十牛圖) 등이 많이 그려졌다. 당대(唐代)에 선종의 대중화와 함께 유행하였으며, 남송대(南宋代)에 전통이 확립되었다. 원대(元代) 이후로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며,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파급되었다고 하지만 전해지는 작품은 없다. 다만 조선시대의 김명국金明國, 한시각韓時覺의 작품들이 전한다.

선화화보

선화화보 宣和畵譜

북송(北宋)시대에 쓰여진 총 20권의 전기체 회화통사. 선화 2년(1120)이라는 어제서(御制序)가 있다. 태조太祖에서 휘종徽宗까지의 기간 중 궁정에 소장된 역대 화가 231명의 작품 총 6,396점을 기록하고 있다. 10부분(門)으로 나뉘어 서술되어 있는데, 각 부분에는 서론 화가의 간략한 전기 작품의 저록이 실려있다. 제1~4권은 도석(道釋), 제5~7권은 인물, 제8권은 궁실 번족(番族), 제9권은 용어(龍漁), 제10~12권은 산수, 제13~14권은 축수(畜獸), 제15~19권은 화조, 제20권은 묵죽(墨竹), 소과(蔬果)를 설명하였다.
《필진筆塵》에서는, “《선화화보》는 여러 사람들의 기록을 뽑아 썼는데 아마도 신하가 찬술(撰述)한 듯 하다. 한 사람이 써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모순에 빠진 부분도 있다”고 기록했다. 채조蔡穡(차이 타오)의 《철위산총담鐵圍山叢談》에서는 이 책에 기술된 작품은 대다수가 미불米芾(미 후, 1051~1107)에 의해 감별(鑑別)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채경蔡京(차이 징)이 정권을 잡음으로써 많은 서화가들이 자리에서 쫓겨났으므로, 화가에 대한 논평 역시 타당성을 잃고 있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북송말기 황실의 심미의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화가나 회화수장의 정황을 나타내고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 많은 화사(畵史)와 화론(畵論) 가운데서도 화가들에 대한 전기가 비교적 완비되어 있다.

설교단

설교단 說敎壇 pulpit(영) pulpitun(라)

기독교 성당 내부에 설교를 하거나 예배를 주재하기 위해 설치된 연단. 난간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며, 벽면이 부조나 금속공예 등으로 장식되기도 한다. 동방교회에 있어서 성소 밖에 설치된 베마(bema)가 그 기원이다. 서방의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는 설교단이 없고 앰보(ambo) 뿐이었으나, 중세 초기에 들어와 예배에 설교가 고정적인 절차가 되면서 성가대석과 분리되어 독립적인 기능을 하게 되었다.
설교단은 대개 본당 회중석 북쪽에 위치하며, 지주에 의하여 바닥 위에 설치된 것 – 피사 세례당(1259~1260), 피사 대성당(1302~1310), 피렌체 산 로렌초 성당(1460~1470)과 벽면에 붙인 것 – 도나텔로의 프라토 대성당(1438), 산타 크로체 성당(1470~1475))의 두 양식이 있다. 가장 초기 설교단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는 밀라노의 성 암브로지오 교회의 설교단이다. 12세기 이탈리아의 설교단은 보통 직사각형 형태이며 주변에는 복음적 상징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고딕식과 초기 르네상스의 설교단은 본당 회중석과 붙어 있으며, 흔히 차양이 달려 있어 공명판 역할을 한다. 17~18세기에는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장식적인 양식의 다양한 조각상과 넓은 공명판이 붙은 목제 설교단이 나타났다. 신교에서는 설교를 가장 중시하여 교회 내부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 되었다. 북구에서는 보통 나무로 설교단을 제작했으나, 이탈리아에서는 석재를 사용하는 전통이 지속되었다.

설주파

설주파 雪舟派

→ 운코쿠파

설치

설치 設置 installation(영)

일상적으로는 전시회를 위해 작품을 걸거나 배치하는 작업 전반을 의미. 보다 엄밀한 의미로는 특정한 장소나 전시공간을 고려하여 제작된 작품과 공간이 총체적인 하나의 환경을 이룸으로써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미술을 말한다. 따라서 설치 미술을 경험하는 관객은 그것이 만들어내는 환경에 직접 참여하게 되며, 작품 자체 및 작품과 주위공간 뿐 아니라 공간과 관람자가 이루는 관계까지 작품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설치라는 용어는 미국 미술 저널리즘에서 조각*이나 회화* 등으로 그 장르를 규정하기 어려운 작품에 대한 편의적인 의미를 담아 전시된 작품의 구성을 보여주는 사진을 설명하는 데에 흔히 쓰이던 말이었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후에 좁은 의미의 ‘설치’를 가리키는 말로서 전환되었다.
설치 작업의 선례는 특히 1950~1960년대의 팝 아트*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캐프로Allan Kaprow(1927~ )의 해프닝*을 위한 세트, 키엔홀츠Edward Kienholz(1927~1994)의 타블로*, 레드 그룸스Red Grooms의 연극적 공간, 올덴버그Claes Oldenburg(1929~ )의 석고로 만든 상품이 가득 찬 상점, 벽지 형태로 제작한 워홀Andy Warhol(1928~1987)의 거대한 판화 등이 그것이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타틀린Vladimir Tatlin(1885~1953)의 <잔게지Zangezi> 무대미술이나 슈비터즈Kurt Schwitters(1887~1948)의 <메르츠*>와 같은 20세기초 미술가들의 작품까지도 확장시킬 수도 있다.
설치 작업은 일반적으로 매매가 불가능하여 단기간 전시된 후에는 ‘기록’만 남고 해체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사진*이나 글로 남는 기록은 작업과 환경과의 본질적 관계를 담지 못하므로, 설치는 일회성을 본연의 속성으로 갖는다고 하겠다. 수천 개의 폐기물을 이용하여 해저정원이나 꿈 같은 환상적인 세계를 연상시키는 극적인 환경을 만든 파프Judy Pfaff의 작품이나, 띠가 그려진 구조물을 통해 그 장소가 지니는 물리적 또는 사회적 특성에 대해 논평하는 뷔렝Daniel Buren(1938~ )의 작품 등이 그러한 예이다. 최근에는 설치미술이라는 용어가 공공장소나 기업의 사옥 같은 곳에 영구적으로 설치된 조각군(彫刻群)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설형문자

설형문자 楔形文字
cuneiform characters(영)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되었던 고문자로서 자획이 쐐기모양(楔形)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메소포타미아 최고(最古)의 문자는 우루크 Ⅳ층 출토의 그림문자로서 기원전 3100년경 발명되었는데, 수메르인이 그림문자에서 설형문자를 만들어내어 이를 아카드인에게 전하였다. 아카드어에서 바빌로니아어, 아시리아어가 파생되어 각각 그 언어를 설형문자로 적었다. 이 문자는 히타이트인, 엘람인, 우랄투인에게 전하여졌으며, 나아가 우가리트의 카난인의 알파벳 문자로 발전한다. 주로 점토판에 갈대펜으로 새겨졌으며, 1세기경까지 서아시아 일부에서 사용되었다.

설화석고

설화석고 雪花石膏 alabaster(영)

고대 조각용으로 많이 사용한 대리석. 흔히 ‘멕시코 얼룩 마노’라고 부르는 석회 탄화물이다. 설화석고는 미세한 과립상의 석고인 석회 황산염으로 흰색이나 누르스름한 색 또는 분홍색을 띠는 부드럽고 반투명한 돌로, 불순물이 섞인 경우 줄무늬나 구름 모양의 무늬가 있기도 하다. 재질이 연해 쉽게 긁히고 부스러지나, 광택내기가 용이해 소형 조각이나 실내에 전시할 작품 제작에 적합하다. 또 채색할 수도 있어 14세기에는 교회의 부조*가 새겨진 제단 뒤 선반과 장식용품, 부장용 인형 등에 널리 사용되었다.

성가퀴

성가퀴

성벽 위에 설치한 높이가 낮은 담. 몸을 숨기고 적을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로 성첩, 여장, 치첩 등이 있다.

성무일과서

성무일과서 聖務日課書
breviary(영)

나날의 봉헌을 위해 필요한 찬송가 및 전례문과 기도를 담은 책. 중세 시대에 성직자들이 성무공과(수도사들이 매일 올리는 7회에 걸친 기도 시간으로 조과 matin, 1시과 prime, 3시과 terce, 6시과 sext, 9시과 nones, 종과 complin이라고 부른다)를 행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가장 초기의 것은 11세기에 나타났으며, 삽화가 그려지는 경우가 많으며 상당히 세심하게 제작되었다.

성물안치실

성물안치실 聖物安置室 sacristy(영) sacristie(프)

기독교 성당의 본 제단에 부속된 작은 방으로 예배에 필요한 제구(祭具)와 제의(祭衣)를 보관한다. 중세까지는 성직자와 성가대를 위한 장소인 성단소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으나, 16세기 이후 규모가 확대되어 성단소와 직접 연결되는 주요한 부분이 되었다. ‘제구실(祭具室)’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