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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서명 署名
sign, signature(영)

작품에 써넣거나 새겨넣는 작자의 이름. 성명 모두 또는 머리문자를 적거나 모노그램*으로 기입하는 등 각자의 개성에 따라 그 방법도 여러 가지이다. 서명의 위치는 작품의 표면이 일반적이나 액자의 뒷면이나 틀, 두루마리*의 축이 되는 나무, 조각*의 좌대나 바닥면 등 가지각색이다. 서명 행위는 서양에서는 그리스 도기 등에서 보이기 시작하였으나, 중세에는 드물었고 자의식이 높아진 르네상스* 이후에 보편화되었다. 수집가가 나오고 작품이 상품화되어 매매가 일반화되면서부터 서명은 거의 필수적으로 쓰이게 되었으며, 위조된 서명도 등장하게 되어 서명이 반드시 작품의 권위를 보장한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동양의 서화에서는 낙관*이 작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서서

서서 署書

→ 방서

서술적 구상

서술적 구상 敍述的具象
Figuration Narrative(프)

1960년대에 등장한 프랑스 신구상회화*의 다른 명칭. 신구상은 당대의 사회와 역사적 현실을 직설적 발언이 아닌 은유를 통해서 표현하는 서술적 구상과 동의어로서 이는 미술에서 구상회화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1967년에 열린 신구상회화 전시회인 <일상의 신화들Mythologies quotidiennes>에서 비평가인 가시오-탈라보Gerald Gassiot-Talabot가 신구상회화를 ‘서술적 구상’이라고 규정한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일상의 신화들>전 서문에서 이야기를 연속적으로 구상화된 재현으로 보여주는 것이 서술적 구상이라고 정의하면서, 그 특징으로 에피소드에 의한 서술과 일시적인 병치, 연속적인 구성양식 등을 거론하였다. 서술적 구상에서는 정지된 한순간이 아니라, 삶처럼 시간의 연속에 의한 이야기와 내용성이 중시된다.
모노리Jacques Monory, 아이요Gilles Aillaud, 프로망제Gerard Fromanger, 아로요Eduardo Arroyo 등의 신구상회화 작가들은 현대사회가 제공하는 갖가지 형태의 이미지 문화를 파괴하거나 해체, 또는 패러디*함으로써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간접적이고 함축적이며 시적으로 그림에 담으려고 했다. 형식보다는 내용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신구상회화, 즉 서술적 구상은 동시대 미국의 팝 아트*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영화나 만화와도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폴데스Peter Foldes는 화가이자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가시오-탈라보는 그림에서 일화성을 표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문학과 일화성을 부정한 모더니즘*에 의해 잃어버린 서술성을 부활시켰음을 높이 평가하였다.

→ ‘신구상회화’ 참조

서술적 미술

서술적 미술 敍述的美術
narrative art(영)

이야기나 역사적 사건을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인 미술로, ‘이야기 미술*(story art)’이라고도 한다. 회화*에서 서술적인 요소는 고대 이집트*부터 주된 표현 내용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성서나 고대 역사에 나오는 일화를 그린 역사화*가 회화의 장르 중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를 점유하였으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는 서술적 회화가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적인 주제들은 19세기말 당시의 생활과 삶의 광경을 선호한 화가들에 의해 배격되었다.
이후 현대 미술가들은 서술적 회화와 조각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으며, 사실상 모더니즘* 이래로 미술에서 서술성은 기피되어 왔다. 그러나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추상미술*을 주장하고 서술성을 터부시한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의 일환으로서 서술적 미술이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는 팝 아트*가, 유럽에서는 신사실주의*가 구상 이미지를 선호하면서 내용과 서술성이 재등장하였고, 영화와 만화의 영향을 받은 서술적 구상*도 태동하였다.
오늘날 서술적 미술은 줄거리의 여부와 관계없이 하나의 캔버스 위에 여러 사건들을 집합적으로 묘사하며 내용을 단편화하거나 이미지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또한 사진*과 텍스트를 사용하여 매우 주관적인 방법으로 사건과 역사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대부분 사진은 연속적으로 제시되며 부수적인 텍스트로 주석을 다는 형식을 취한다. ‘서술적인 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바 있는 영국의 비평가 라이하트Jasia Reihardt의 정의에 따르면, 이미지의 탈바꿈을 다루는 추상 회화도 이 범주 안에 포함될 수 있다. 서술의 시각적인 표현에서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회화이며 현대에는 퍼포먼스*와 설치* 미술, 비디오 아트*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서술적인 접근 방식은 20세기말 사회적 상호 접촉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요소인 심리학적 자아성찰(self examination)과 역할연기(role playing)에 적합하다고 여겨진다.

서스펜디드 페인팅

서스펜디드 페인팅 suspended painting(영)

벽이나 천장의 특정 지점에 부착된 틀을 갖지 않는 캔버스* 그림. 이러한 그림은 그 자체로 조각적인 형태를 이룰 만큼 느슨하게 드리워져 있거나 주름이 잡혔거나 비틀어져 있으며 미국의 길리엄Sam Gilliam이 그 대표적인 작가이다. 서스펜디드 페인팅의 개념은 반(反)형식, 스테인 페인팅* 그리고 과정미술*의 제반 요소를 결합하는 것에서 등장하였다. 길리엄 이외에 라이만Robert Ryman(1930~ ), 루이스Philip Lewis, 스테픈스David Stephens, 사우덜Derek Southall 등이 서스펜디드 페인팅을 제작하였다.

서씨체

서씨체 徐氏體

서희徐熙(쉬 시)가 화조화*를 그렸던 수법을 칭하는 말.

→ ‘화조화’ 참조

서안

서안 書案

한국 전통 가구의 하나로 책을 읽거나 글씨를 쓰는 용도의 평좌식(平座式) 책상으로, 경상*(經床) 역시 서안의 일종이나 좌우 양쪽 귀퉁이가 두루마리형으로 올라가는 형태상의 차이가 있다. 소나무로 만든 것이 가장 많으며 제주도의 산유자나무, 호남의 먹감나무 및 황해도의 해묵은 뽕나무도 많이 사용된다. 주로 나뭇결이 좋은 무늬목 중에서 단단하고 정갈한 것으로 간결하고 소박한 품격으로 만든다. 고려시대의 청동제 경상이 남아 있어서 고려시대에도 서안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려 말기의 나한도와 조선시대 풍속화* 등에서도 서안의 예가 보인다. 하지만 현존하는 대부분의 유물은 대개 19세기 이후의 것이며 규격화된 것이 없고 형태도 다양하다.

서원아집도

서원아집도 西園雅集圖

동양 고사인물화의 한 화제(畵題). 북송北宋의 원우 원년(元祐, 1086) 변경汴京(開封을 가리킴)에 있는 왕선王詵(우앙 시앤)의 저택 서편 정원에서 소식蘇軾(쑤 스, 1036~1101), 채조蔡肇(차이 자오), 이지의李之儀(리 즈이), 소철蘇轍(쑤 저), 황정견黃庭堅(후앙 띵지엔, 1045~1105), 이공린李公麟(리 꽁린, 1040~1106), 조보지趙補之(자오 후즈), 미불米芾(미 후, 1051~1107) 등 16인(진사도陳師道(츠언 스따오)를 넣어 17인이라고도 함)의 문인 묵객이 잔치를 벌이며 풍류를 즐겼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이공린이 이 정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미불이 찬(贊)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은 전하지 않고 미불이 쓴 찬만 법첩*(法帖)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역사상의 유명한 문사들을 숭상하는 화제로 많은 회화작품이 그려졌다. 마원馬遠(마 위엔)이 그린 것(캔사스시티 넬슨미술관)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그외에 명明의 구영仇英(처우 잉), 우구尤求(이어 치어우)의 그림(모두 대북 고궁박물원)이 있다.
한국에는 18세기 이후 작품들이 남아 있다. 김홍도金弘道의 <선면서원아집도扇面西園雅集圖>에는 문인 강세황姜世晃(1716~1791)의 제발(題跋)이 적혀 있다. 여기서 강세황은 송대(宋代) 문인들의 풍류장면에 대해 “인간세상에 청광(淸曠; 맑고 밝음)의 즐거움이 이보다 나은 것은 없다. 아아, 명리(名利)의 마당에 휩쓸려 물러갈 줄 모르는 자는 어찌 쉽게 이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함으로써 문인들의 고아하고 아취있는 아집(雅集)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였다. 서원아집도는 조선시대에서도 즐겨 그려진 화제인데, 남아있는 작품 중 김홍도의 <선면서원아집도>를 비롯해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 등이 유명하다.

서정추상

서정추상 抒情抽象
Abstraction Lyrique(프)

1947년과 1950년대말 사이에 유행한 프랑스식 앵포르멜 미술*. 액션 페인팅*이나 타시슴*과도 혼용되기도 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미술 형식에 반대하여 충동적인 형태와 무의식의 자발적인 표현, 작가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즉흥적인 제스처*로 인한 격렬한 기호들을 통해 화가의 내적인 심리와 감정 및 행위를 표현하려는 태도이다. 1947년 브리앙Camille Bryen과 마티유Georges Mathiue(1921~ )에 의해 개최된 전시회인 <상상의 세계L’Imaginaire>는 원래 ‘서정추상을 향하여Ver l’Abstraction Lyrique’라는 이름으로 정해졌다가 최종 단계에서 변경된 것이다. 서정적 추상이란 개념은 애초에 기하학적 추상*파의 작가들에 도전하기 위한 논쟁의 도구로 고안된 것인데, 이 새로운 운동에 참여한 화가 중 일부는 ‘심리적 추상’이란 명칭이 더 적합하다고 간주하기도 했다.
슈나이더Gérard Schneider, 술라주Pierre Soulages(1919~ ), 아르퉁Hans Hartung(1904~1989), 볼스Wols(1913~1951), 브리앙, 마티유, 리오펠Jean-Paul Riopelle(1923~ ), 드고텍스Jean Degottex, 한타이Simon Hantaï 같은 서정추상 작가들은 동양의 서예가 갖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속성을 하나의 기법으로 취하는 등 즉흥적이고 주관적인 태도로 작업한다. 작업에 있어서 화가의 신체적 참여와 유기적인 구조에 가치를 두고 작가의 내면적 감정의 표출에 제작을 전적으로 맡기는 이들의 태도는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1866~1944)의 정감적이고 표현적인 방법을 넘어서서 기하학적이고 차가운 추상에 대립되는 모든 경향으로 확산되었다.

→ ‘앵포르멜 미술’ ‘아르 오트르’ ‘타시슴’ 참조

서체

서체 書體

한자에는 형(形), 음(音), 뜻(意)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여기서 형은 글자의 자형(字形)을 말한다. 자형은 고대로부터 형식상의 변천이 있었으며, 시대에 따라 문자의 형식도 점차 변화됐다.
고대의 갑골문*에서도 서체의 변화는 인지되지만, 고정된 형식은 아직 없다. 금문(金文)도 거의 마찬가지로 일정한 서체는 인정하기 어렵다. 다만 주대(周代)의 대전*(大篆)이라든가 고문(古文)으로 불리는 문자는 이미 서체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서, 한대(漢代)의 자전(字典)에도 나타나고 있다.
서체가 주목되는 것은 후한대(後漢代)의 허신許愼(쉬 선)의 《설문해자說文解字》의 서문에 나오는 진팔체(秦八體), 신육서(新六書)에서 비롯된다. 서체에는 그 시대에 통용되는 정체(正體)와 특수한 사물에 대해 쓰여지는 응용체가 있다. 진秦나라의 전서*, 한漢나라의 예서*, 육조(六朝) 이후의 정서인 해서*는 각각의 시대에 통용된 정체의 글씨이며, 각부(刻符), 충서(蟲書), 모인(摹印), 수서(桂書), 서서(署書)라고 하는 것은 응용체의 글씨이다.
후대가 되면서 응용체의 글씨는 점차 쇠미해지고 주로 정체가 사용되게 된다. 당대(唐代)에는 역대의 서체를 정리하여 고문, 대전(大篆), 주문(籀文), 소전*(小篆), 팔분*, 예서, 장초*, 행서*, 비백서*, 초서*의 10가지로 나뉘었다. 이 중에 소전과 팔분은 석비(石碑)에 사용되는 경우가 있으며 일반의 전적(典籍), 표진(表秦), 공사문소(公私文疏) 등에는 모두 예서가 쓰여지고, 기록이나 서간에는 행초(行草)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글씨의 발흥과 더불어 행서의 비문이나 초서의 전적 등도 나타나고, 서체는 점차 예술품으로서의 세련도를 더해갔다. 송대(宋代) 이후 글씨를 예술작품으로 제작하는 경향이 강해짐과 동시에 서체를 취급하는 방법도, 실용적인 면만이 아니라 조형 미술로서의 작품 속에 넣게 되었다. 후세 청대(淸代)의 비학파 사이에서 전서와 예서가 유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말(淸末)에는 갑골문이나 목간(木簡)에 새로운 글씨의 조형미를 추구하게 되었다. 현재 중국에서는 간체(簡體)를 시행하고, 그 중에 장초나 초체(草體)를 운용함으로써 서체의 제한이 지켜지지 않는 새로운 정체의 글씨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