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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線

선 線 line(영)

미술에 있어서 보통 색(色), 면(面)과 함께 형태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 특히 채화(彩畵)와 구별되는 묘화(描畵)에서는 선 자체가 하나의 분야가 된다. 그러나 선은 본래 면 주변에 또는 면 상호 간의 한계로서 이념적으로만 존재할 뿐 시각적인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재현적인 예술에 있어서 선은 현실성의 상징적 표현이 된다. 대상의 형태의 ‘표현’을 목적으로 하는 선에는 대상을 외면으로부터 규정하는 폐쇄적인 윤곽선과 이를 내면에서 한정하여 부분적인 양성(量性)을 상징하는 선이 있는데, 이 모두가 대상의 공간적 규정을 상징하는 재현적인 선의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선의 기능은 이것에 그치지 않는다. 선에는 내부 촉각 특히 운동에 관한 재생 감각을 매개로 하여 감정이나 의욕 또는 정취가 쉽게 결합된다. 즉 방향, 속도, 힘, 장단, 굵고 가는 것, 소밀(疎密), 굴신(屈伸) 등의 기교에 의해 무한한 정신 표출이 가능하다. 이러한 의미의 선은 대상의 의미나 표상(表象)과 협동하거나 또는 그것과 독립적으로 유정화(有情化)되거나 생명화된다. 따라서 이러한 선의 기능은 묘화뿐 아니라 채화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근대의 추상적인 회화에서는 이런 종류의 선이 매우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시되어야 하는 선의 기능으로는 선의 체감적인 단축에 의한 원근법*의 효과나 선의 농담(濃淡), 단속, 굵고 가늘기 등의 수법에 의한 색채 및 명암의 효과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화면에 실제로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면의 각 부위 사이에 자연히 일정한 시선 방향이 고정되고 그것이 구도의 중요한 구성 요인이 된다.

선 원근법

선 원근법 線遠近法
linear perspective(영)

간단히 말해서 기울어진 선의 장치가 화면 뒤의 어떤 공간적 깊이를 표시하는 것으로 읽히도록 하는 방식. 원근법*이라는 말은 ‘투과하여 보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perspicere’에서 유래한다. 대상을 전체 공간과 관련하여 파악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고안된 원근법은 삼차원의 현실을 이차원의 평면에 재현하는 회화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으나 건축, 조경, 무대장치 등의 시각적 효과를 위해서도 사용된다.
원근법은 선 원근법과 대기 원근법*으로 나뉘는데, 선 원근법은 일정한 비율이나 법칙이 없이 단순히 멀리 있는 것을 위에 또는 작게 그리거나 사선을 사용하여 배경을 표현하는 초보적인 원근 표현방식을 탈피하여 기하학적인 기초 위에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체계화시킨 일종의 공식이다. 선 원근법은 삼차원의 대상물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대상들이 이루는 공간 내에서의 원근을 표현하기 위해 소실점(vanishing point)을 도입하였다. 이야기 안에서의 중요도에 따라 크기와 위치가 배열되는 중세의 방식이 개념적인 배치라면, 과학적인 투시에 따른 원근법의 사용은 시각을 중시하는 사실적인 배치 방법이었다.
소실점의 기하학적 의미를 명확히 포착한 투시도법의 원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기 피렌체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1377~1446)에 의해 1410년경에 발견되었으며, 그의 이론은 《회화에 관하여On Painting》(1436)란 저술에서 화가들을 위한 원근법적 구성을 기술했던 알베르티Leone Battista Alberti(1404~1472)에 의해 발전되고 널리 알려졌다. 많은 화가와 학자들이 이를 실험하였으며 특히 화가 우첼로Paolo Uccello(1397~1475)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1415~1492)에 의해 체계화되고 널리 보급되었다. 일점 시점을 요구하는 선 원근법의 대표적인 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1452~1519)의 <최후의 만찬>(1495~1498)이며, 16세기 초엽에는 화가나 건축가의 상식적 소양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근현대의 미술에서는 서구 원근법의 지배적인 일점 시점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미술을 낳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낭만주의*는 법칙적인 원근법을 표현상의 제약으로 여겼고, 입체주의*는 이에 보다 강력한 방식으로 도전하면서 다시 점을 사용했으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1888~1978)는 신비감과 불안함을 유도하기 위해 극도의 원근 표현을 이용하였다.

선 인그레이빙

선 인그레이빙 line engraving(영)

동판화* 기법의 하나로 금속요판(金屬凹版) 또는 조각동판이라고 한다. 뷰린이나 니들, 포인트라는 도구를 사용해 도안대로 금속판의 표면을 파낸 후, 파낸 선 안으로 잉크를 문질러 넣어 힘을 가해 눌러 찍어내는 음각 기법의 판화이다. 금속판으로는 철, 아연, 은판이 쓰이기도 하나 흔히 사용되는 것은 동판이다. 에칭*처럼 바늘 끝으로 단순히 표면을 긁고 약품에 의한 화학 작용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사용해 금속판을 어느 정도 깊이까지 파서 새겨진 선이 그대로 인쇄되어 화면에 나타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선을 새길 때는 도구를 쥔 손에 힘을 가감하여 깊이를 조정하며 깊게 팔수록 굵은 선이 나타난다. 선 인그레이빙은 여러 가지 크기의 점이나 평행선, 그물눈 형태의 선들을 이용해 명암*과 농담의 효과를 낼 수도 있으나, 이 매체의 본질적 특성은 금속성의 힘, 명쾌함, 정확성을 느끼게 하는 데 있다.
선 인그레이빙 기법은 15세기 중기 독일과 이탈리아의 금세공인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발생했다. 르네상스* 시대인 16세기초에 완숙기에 이른 이 기법의 유명한 제작자로는 뒤러Albrecht Dürer(1471~1528)가 있다. 17세기에는 프랑스에 유명한 인그레이빙 추상화 학교가 생겨 기법상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 때부터 제작가들은 판화 제작상의 노고를 줄이고자 에칭과 결합시켜 도안은 에칭으로 하고 정교한 표현을 요하는 곳과 마무리만을 인그레이빙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19세기 후반 사진*이 발달하면서 선 인그레이빙의 기능은 실용적 측면이 아닌, 기법에 내재한 예술적 속성을 추구하는 측면으로 변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