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 브뤼
아르 브뤼 Art Brut(프)
세련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를 지닌 미술로, ‘원생미술(原生美術)’로 번역된다. 프랑스의 화가 뒤뷔페Jean Dubuffet(1901~1985)가 1945년에 만들어낸 용어로서, 아마추어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일종의 순수한 미술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뒤뷔페는 어린이나 정신병자 또는 소박한 미술가 등 교양이나 전통적 미술에 거의 영향받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그려진 그림이 고도로 훈련되고 의도적인 직업 화가들의 작품보다 훨씬 솔직하고 창조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특성을 하나의 기법으로서 도입하였다. ‘날 것 그대로의’ ‘다듬지 않은’ ‘야만적인’등의 뜻을 갖는 ‘brut’라는 말은 서구적인 ‘지(知)’가 배제되거나 그것에 길들여짐을 거부하는 것, 본능과 무의식에 의해 창조된 산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르 브뤼는 처음에는 반교양주의적, 반문화적, 반예술적인 입장을 가리켰으나 후에는 종말에 달한 서구의 지적 풍토를 재생시키기 위한 기폭제로서 인정되었다.
사실 이런 경향은 정신병리학적인 관심들, 즉 1907년 레자Marcel Réja(의사 뫼니에Paul Meunier의 가명)가 출간한 《정신병자들의 미술l’ Art chez les fous》, 의사인 모르겐탈러Morgenthaler의 미친 작가 뵐플리Adolf Wölfli에 대한 1922년의 연구, 프린츠호른Hans Prinzhorn의 《정신병자의 조각품Bildnerei der Geisteskranken》과 《광기의 표현Expressions de la folie》(1922), 잡지 《미노토르Minotaure》에 실린 아프리카 미술 및 영매적 작품들과 유사한 ‘원생적인’ 사진들과 같은 것이 그 선례가 된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부터 뒤뷔페는 정신병자, 어린이 그리고 교육받지 못한 이들의 그림을 계통적으로 수집하여 1947년에 드루엥Drouin 화랑에서 전시를 열었고, 1948년에는 브르통André Breton(1896~1966), 타피에Michel Tapié, 포랭Jean Louis Forain(1852~1931) 등과 함께 협회를 설립했다. 비전문가들의 작품이 영감을 준다는 사실을 안 뒤뷔페는 진흙, 아스팔트, 유리조각 같은 특이한 재료와 긁거나 베어내는 기법, 거칠면서도 표현적인 드로잉 양식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역설적으로 ‘아르 브뤼’라는 용어는 그의 작품 중 ‘나이브 미술*’과는 거리가 먼 양식의 작품에 사용되었다. 뒤뷔페는 아르 브뤼에 대한 많은 강연을 하였으며, 특히 1951년 시카고 예술클럽에서의 강연은 시카고 이미지즘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1967년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수집한 작품들 중 700여 점을 전시하였고, 1976년에는 스위스 로잔, 샤토 드 보리유Château de Beaulieu에 아르 브뤼 미술관을 개관하게 된다. 또 “나의 화면에는 색채나 명도, 그리고 광채, 질감의 변화도 없이 단지 모든 종류의 표지(標識), 마티에르*를 겁내는 손의 생생한 궤적이나 자국만이 나타나 있다. 나는 구석구석까지 모노크롬*의 진흙만으로 만들어져 있는 듯한 그림을 꿈꾼다”는 그의 반회화적인 관념은 타피에의 앵포르멜* 이념에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