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 미술
아시리아 미술 Assyrian Art(영)
고대 메소포타미아 미술에 있어 최후의 전성기를 이룬 미술. 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도시 아수르를 본거지로 하여 기원전 2000년경 말부터 군사 및 정치력을 강화하여 점차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바빌로니아 지방에까지 세력을 넓혔다. 그리고 기원전 1000년경에는 거의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군림하는 광대한 제국을 형성하였다. 이처럼 아시리아는 정치, 군사면에서 강력한 힘을 과시했으나 문화적으로는 뒤떨어져 바빌로니아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처지였으며 이러한 경향은 종교, 문학 등의 분야에서 뚜렷하였다. 그러나 미술 분야에서는 아시리아 제국시대(기원전 9세기 이후)부터 독자적인 특색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예술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데 박육부조(薄肉浮彫)와 같은 평면적인 미술에서 특히 뛰어난 면모를 보여준다.
전기 아시리아시대(기원전 2450년경까지)의 미술은 현재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발굴 결과, 아수르에 성새(城塞)가 조성되고 신전도 세워졌음을 알 수 있게 된 것 외에 마리에서 출토된 조상과 흡사한 인물조각이나 약간의 원통인장(圓筒印章) 등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수메르 문화의 영향이 크며, 기원전 2100년경부터 상류계급의 주택은 앞채와 안채 두 정원을 중심으로 구성, 중정 사이에 응접 광장을 만드는 것이 관례가 되어 이 관습은 그 후로도 오래 계속되었다.
중기 아시리아시대(기원전 1000년 초까지)에는 아수르에 몇 개의 신전, 성탑, 궁전 등이 조성되었다. 건축에서는 투쿨티니누르타 1세가 건설하였거나 재건한 이슈타르신 및 아수르신의 신전 등이, 조각에서는 제단을 향하여 예배하는 왕을 부조*한 석회석 환조 제단과 추종하는 짐승과 신을 좌우로 거느린 풍요신의 부조 등이 대표적이다. 또 이 시기에는 원통인장에 훌륭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동물이나 신화, 전설의 주인공이 묘사되었으며 그 표현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며 역동적인 장면구성이 특징을 이룬다. 한편 <투쿨티니 누르타 1세의 제단> 등 부조 작품이 적지 않게 남아 있어 후기 아시리아시대의 개화한 미술의 특질이 조금씩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기 아시리아시대(기원전 900~612년경)에 판세의 확장과 더불어 미술도 화려한 양상을 띠게 된다. 기원전 9세기의 아슈르나지르팔 2세는 카라프, 현재의 님루드에 새 도시를 조성하고 대규모의 북서(北西) 궁전을 건설하였다. 대궁전은 옥좌실 및 왕이 사생활을 영위하는 부분, 부엌, 창고, 위병식 등을 포함하는 서비스 부분, 정무기관, 신전 등의 건물이 각각 중정을 둘러싼 단위로 부가되어 있고 많은 중정을 포함한 방대한 복합체를 이루었다. 주 출입문에는 설화석고*로 만든 인면수신(人面獸身)의 수호상이 놓여있고 옥좌실을 중심으로 하는 한 구획과 중정은 박육부조의 많은 오르토스타트(부조석판)로 장식되었다.
부조는 주제에 따라 둘로 분류된다. 하나는 아슈르나지르팔왕이 이웃 여러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전투장면을 그린 것으로 주로 옥좌살 벽에 방을 에워싸듯이 배치되어 있는데 상하 2단으로 되어있다. 가로로 긴 부조 화면에 아시리아군, 적군, 말과 전차, 요새 등으로 구성된 장면이 차례로 나타나면서 설화적이고 동적인 화면 전개를 보여준다. 또한 이에 대하여 왕, 시종, 날개 달린 정령상, 생명의 나무나 대추야자 같은 성수(聖樹) 등이 등장하여 예배, 종교의식과 같은 장면을 나타내는 일련의 부조가 있다. 화면은 움직임이 적어 장중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며 세부묘사는 치밀하고 신중하다.
아슈르나지르팔을 잇는 여러 제왕 시대에도 부조가 제작되고 있었으나 전성기는 사르곤 2세가 두르 샤를르킨, 현재의 코르사바드에 도시를 신설하면서 시작된다. 이때 사르곤 궁전 외에 대규모의 신전과 첨탑이 조성되었으나 도시의 조성 그 자체는 미완성으로 끝났다. 커다란 건물 출입문에는 인면수신의 석상이 놓여있고 궁전의 중정에는 사르곤과 열을 지어 선 시종, 조공자(朝貢者)를 나타낸 거대한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사르곤의 후계자들은 주로 니네베에 궁전을 세웠는데 그 중에서도 아슈르바니팔은 궁전에 갖가지 재료로 수많은 부조를 남겼다. 왕의 원정장면을 다룬 부조로서는 <우라이 강변의 전투>가 알려져 있다. 여기서는 기존의 설화식의 방식이 아니라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화면으로 처리되어 있다.
한편 아슈르바니팔은 사자사냥을 좋아했는데, 사자사냥을 다룬 일련의 부조는 뛰어난 아시리아 부조 예술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동물에 대한 뛰어난 관찰력과 순간적인 동작이나 표정까지 묘사하는 정확한 표현력이 이들 작품의 특색이다. 반면 인물 묘사는 다소 유형적인 편이다.
아슈르바니팔 시대의 부조군(群)을 끝으로 아시리아 미술은 막을 내렸고 왕국도 얼마 후(기원전 612) 메디아와 바빌로니아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다. 후기 아시리아 시대에는 몇 개의 환조조상이 만들어졌으나 모두 평면적이며 박력이 없다.
그 밖에 엄청난 수의 상아 세공품이 각 도시에서 출토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 님루드에서 출토된 <아시리아의 모나리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