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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화단

도쿄화단 東京畵壇

메이지유신(明治維新)시기에 도쿄東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일본의 근대화단. 미국인으로서 일본 전통미술의 우수성을 깨우쳐준 페놀로사Earnest Francisco Flenollosa(1853~1908)에 힘입어 등장한 도쿄화단은 페놀로사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던 지식인이자 관료인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의 사상이 주축이 되었다. 오카쿠라 덴신이 1890년(메이지 23)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를 설립하게 되는데, 이 곳이 초기 도쿄화단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오카쿠라의 사상을 이해하고 화폭에 옮겼던 화가로는 요코야마 다이칸橫山大觀, 히시다 쇼菱田春章, 시모무라 간잔下村觀山 등이 있다. 오카쿠라 덴신은 전통적인 색채를 소중히 여기는 한편 서양회화에서 중시하던 빛, 대기감 등을 일본의 전통회화와 접합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몽롱체(朦朧體)가 등장하여 동양화의 전통적인 선(線)이 일시적으로 부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는 동양회화의 특징인 선(線)을 살리는 방향으로 회귀하였고 여기에 서구적인 사실성을 더하여 일본 근대기의 명작을 낳게 되었다.
도쿄화단의 중심이었던 도쿄미술학교는 교장이었던 오카쿠라 덴신이 불명예스럽게 물러나 그의 수제자들과 함께 1898년(메이지 31년) 일본미술원*日本美術院을 설립하게 되면서 그 중심적인 역할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일본미술원은 화단의 재야단체로서 혁신적인 실험을 통하여 동양화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일본미술원의 멤버로 기존 인물들 이외에 이마무라 시코今村紫紅, 고바야시 고케이小林古徑, 하야미 교슈速水御舟 등이 있다. 서양화에서 후기인상주의*나 초현실주의* 개념을 빌려 동양화에 적용하여 파격적인 작품을 시도하면서 신선하고 세련된 작품을 선보이기도 하고, 일본회화의 전통인 야마토에*를 근대적 취향으로 변형시키는 시도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자 일본미술원도 분열의 조짐을 보이면서 약화된다. 그러나 오카쿠라 덴신이 사망한 후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요코야마 다이칸을 중심으로 재흥일본미술원*在興日本美術院이 다시 설립돼 분산된 힘을 응집할 수 있었다. 비록 문전(文展)에서 보이는 아카데미적 경향과는 다른 재야단체이기는 하지만 일본미술원 및 재흥일본미술원이야말로 일본화단을 선도한 가장 큰 힘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