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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사실주의 寫實主義
Realism(영) Réalisme(프)

현실을 존중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려는 예술 제작의 태도 또는 방법. 묘사하려는 대상을 양식화, 이상화, 추상화, 왜곡하는 방법과 대립하여 대상의 세부 특징까지 정확히 재현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주의의 본래 의미는 단순히 자연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대로의 일상 생활을 주제로 삼는 것을 뜻한다. 이에 반해 자연주의*는 단지 외형을 충실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좁은 의미로는 근대 시민사회의 성립에 따라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를 대신하여 1840년대 쿠르베Gustave Courbet(1819~1877), 도미에Honoré Daumier(1808~1879) 등에 의해 일어나 1850년대에 절정에 달한 프랑스의 미술운동을 말한다. 사실주의 미술은 사실주의 문학과 더불어 19세기 중엽에 프랑스 예술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사실주의의 주창자들은 아카데미*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인위성을 거부하고 예술 작품이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동시대 의식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따라서 역사나 알레고리*, 미적 대상* 등 전통적인 주제를 탈피하고 그때까지 무시당했던 중하층 서민들의 생활상, 평범한 일반 시민들의 모습과 가치관 등 동세대의 삶과 사회의 면모를 재현하는 작업에 진지하게 몰두하였다.
사실주의 미학을 최초로 선언한 화가인 쿠르베는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천사를 그릴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자기 자신이 직접 체험한 당대의 모습만을 꾸밈이나 미화하지 않고 정직하게 그리겠다는 예술적 의지를 천명하였다. 그는 1855년 만국박람회에 자신의 작품이 거부당하자 가설천막에다 ‘사실주의, 구스타브 쿠르베’라는 이름을 내걸어 개인 전시회를 열고, 그 서문에서 “자기가 속하는 시대의 풍속, 관념, 현실을 본대로 그린다”고 밝혔다. 쿠르베와 함께 열렬한 민주주의자였던 도미에는 파리의 빈민가와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빈민층, 악덕 변호사, 부패한 정치가 등을 주제로 프랑스 사회의 부도덕성을 풍자하였다. 한편 19세기 미국에서도 사실주의 미술이 나타났는데, 호머Winslow Homer(1836~1910)나 이킨스Thomas Eakins(1884~1916)는 당시 미국적 삶을 솔직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재현하였다.
추상에 경도되었던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은 사실주의를 배격하였지만, 대공황기에는 사회적 사실주의* 미술운동이 등장하였고 195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팝 아트*와 신사실주의*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심리적인 상황에 의거하여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묘사한 피슬Eric Fischl의 작품같은 경우는 사실주의를 동시대적인 경험을 조명하고 논평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긴 19세기 사실주의의 관점을 연상시킨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나타난 극사실주의*는 기계적 복제*의 응용이나 세부의 클로즈 업 등을 이용하여 대상을 실물과 착각을 일으킬만큼 완벽하게 재현함으로써 현대의 복제 문화를 반영하였다. 이밖에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운동으로는 20세기 구소련에서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창도 아래 전개된 사회주의 사실주의*가 있으나, 실제로는 엄격한 의미에서 사실주의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는 용감하고 강인한 노동자와 기술자의 모범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대개 대상을 자연주의적으로 이상화하였기 때문이다.

사실주의 선언

사실주의 선언 寫實主義宣言
Realistic Manifesto(영)

러시아 구축주의*자인 가보Naum Gabo(1890~1977)와 펩스너Antoine Pevsner(1886~1962),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이 1970년 8월 5일 모스크바에서 발표한 선언문. 1917년에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 이후 구축주의 미술가들은 보다 개인적인 미술을 추구하려는 작가들과 대중을 위한 공익적 설계를 내놓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이견으로 두 파로 갈라졌다. 즉 타틀린Vladimir Tatlin(1885~1953)이나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1891~1956)가 점점 예술이 특수하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혁명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가보와 펩스너는 화가로서의 독자성과 자신의 자유로운 실험에 따르는 화가의 권리를 존속시키기 위해서 투쟁하였다. 이러한 입장들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사실주의 선언>의 선포이다. 가보와 펩스너가 서명한 선언의 초안은 사실 가보에 의해 작성되었으므로, 그 선언문에 포함된 사상의 책임은 주로 가보가 지고 있었다.
사실주의 선언문은 ‘인간 역사의 장에서 아직 펼쳐지지 않은 시대’에 적절한, 예술에 있어서 새롭고 위대한 양식을 열정적으로 기원하고 있었다. 그 새로운 프로그램의 본질은 ‘삶이 자리잡은 그 위에 예술이 구축되어져야만 하는 유일한 형식’으로서의 공간과 시간의 재탄생이었다. 서술적인 색채와 선, 공간, 양괴는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즉 모든 요소들은 그들 자신의 실재성을 갖게 되었고 시간과 운동이 그들의 작업에서 기본적인 것이 되었다. 이 선언문은 몇 해에 걸친 러시아 추상미술의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고양되었던 사상이 그 정점에 도달한 것이었다. 비록 가보는 선언문을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 당시 자신의 그룹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에 대한 하나의 요약으로서 기술하였지만, 그것은 20세기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의 하나가 되었다. 또한 당시 부상하고 있었던 추상 화가와 조각가들이 입체주의*의 시작 이후로 분투해 왔던 문제들과 논쟁들에 대한 많은 부분을 명쾌하게 요약한 것이었다.

→ ‘구축주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