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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상

사천왕상 四天王像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네 명의 대천왕으로, ‘사대천왕(四大天王)’ ‘사왕(四王)’ ‘호세천왕(護世天王)’이라고도 부른다. 원시경전인 《장아함경長阿含經》 〈제5전존경第五典尊經〉 제3에는, “사천왕은 그 방위에 따라 각기 자리를 담당하고 정법을 수호하고 마귀의 습격을 방지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천왕이 조형화된 것은 4세기경에 성립한 《금강명경金剛明經》이나 《관정경灌頂經》이 유행하기 시작한 이후부터이다. 인도에서는 간다라* 지역에서 출토된 불전도*나 부조*에 사천왕상이 나타나는데, 주로 고대 인도의 귀인 형상을 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화되면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무인형의 형상으로 정착된다. 운강석굴* 가운데 천왕은 천관(天冠)만 쓰고 갑옷은 입지 않아 무인상으로 정착되기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수隋, 당唐 이후에야 비로소 갑옷을 입고 천관을 쓴 무장의 형상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무장형의 사천왕상은 중국, 한국,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사천왕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 들고 있는 지물*이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칼과 창, 탑 등의 무기를 들고 있다. 그런데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은 항상 보탑을 들고 있어 명칭을 확인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한편 원대(元代) 이후에는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사천왕이 조성되는데, 동방지국천왕(東方地國天王)이 비파(琵琶),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이 보검(寶劍), 서방다목천왕(西方多目天王)이 나삭(羅索), 북방다문천왕이 사리탑*이나 은서(銀鼠)를 쥐고 있다.
한국에서는 신라선덕여왕 때 양지良志라는 승려가 사천왕상을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있어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통일신라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 출토(出土) 녹유사천왕상전綠釉四天王像塼〉, 감은사지感恩寺址 3층석탑 출토 청동사리구(靑銅舍利具)에 부착된 사천왕상, 〈석굴암石窟庵의 사천왕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