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단
사직단 社稷壇 she-ji-tan(중)
종묘와 함께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물의 신인 ‘직稷’을 제사지내는 곳. 사직에 대한 제사는 중국에서 주대(周代) 이전부터 있었던 듯하고, 후한後漢의 건무建武 2년(26)에는 낙양의 종묘 서쪽에 태사직단(太社稷壇)이 설치되었다. 이후 명대(明代) 초기까지 대체로 지속되었고 수도의 태사직단은 종묘의 서쪽에 설치되었다. 또한 사단(社壇)은 동쪽에, 직단(稷壇)은 서쪽에 놓였는데, 각각 후토신(后土神)과 후직신(后稷神)을 제사지내고 규모는 사방 5장, 높이 5척, 두 단의 거리가 5장이었다.
사단은 사방을 청백적흑(淸白赤黑), 윗면을 황색의 흙으로 덮고 직단은 5색의 흙을 쓰지 않았다. 명대 초기에는 사직불가분설(社稷不可分說)로 인하여 남경의 태사직단이 상하 2단으로 고쳐지고, 15세기초부터 북경에도 상하 2단으로 되었다. 송대(宋代)부터 청대(淸代)까지 부(府), 주(州), 현(縣)에서도 각각 사직단을 설치했다.
한국에서는 단을 2개로 만들어 사단은 동쪽에 직단은 서쪽에 배치하여 사방이 각각 2장 5치로 북쪽에서 남으로 향하게 하였고 사방으로 계단 3층을 쌓았다. 현재의 사직공원 안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