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탁자
사방탁자 四方卓子
한국 전통 목가구의 하나로 서책이나 완상품을 진열할 수 있도록 층널을 너댓개 얹은 네모 반듯한 탁자. 각목의 뼈대가 지닌 자연스런 나뭇결을 최대한 살리고 면막음을 거의 없애서 골격만으로 이뤄진 단순한 가구이며 가장 현대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간혹 여러 층 중에서 한 층이나 혹은 맨 아래쪽의 면을 막고 문을 단 삼층탁자도 있다.
사방탁자 四方卓子
한국 전통 목가구의 하나로 서책이나 완상품을 진열할 수 있도록 층널을 너댓개 얹은 네모 반듯한 탁자. 각목의 뼈대가 지닌 자연스런 나뭇결을 최대한 살리고 면막음을 거의 없애서 골격만으로 이뤄진 단순한 가구이며 가장 현대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간혹 여러 층 중에서 한 층이나 혹은 맨 아래쪽의 면을 막고 문을 단 삼층탁자도 있다.
사산조 이란 미술 Sassanian Art(영)
224년 이란의 파르스Fars 지방에서 흥기(興起)한 아르다시르Ardashir 1세(재위 224~241)가 파르티아*를 물리치고 세운 왕조로 642년까지 이란을 통치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혈통임을 주장한 사산 왕조는 이란 고전 미술을 완성시켰다. 아르다시르 1세가 건설한 도시인 피루자바드Firuzabad의 궁전은 거칠게 자른 돌을 회반죽으로 붙인 이란 고유의 건축 기술로 축조되었다.
샤푸르Shapur 1세(재위 241~272)가 건설한 수도 비샤푸르Bishapur에도 2개의 궁전과 아나히타 신전의 유구가 남아 있다. 비샤푸르는 그리스의 전통에 따라 사각형의 요새지로 세워졌다. 궁전의 중앙에는 커다란 홀이 있고 사면에는 3중의 궁륭형 이완(iwān)이 있다. 석판이 깔린 이완의 바닥에는 모자이크* 패널*이 테두리를 이루고 있다. 모자이크의 주제는 〈화환을 만드는 여인〉 〈하프를 연주하는 여인〉 등인데 로마 미술*의 영향을 보여 준다.
5세기경에 만들어진 사르비스탄Sarvistan 궁전은 피루자바드 궁전의 구조와 비슷하여 이완이 있는 건물의 앞부분은 공식적인 장소로, 뜰이 있는 뒷부분은 거주지역으로 나누어진다. 목재가 부족한 이 지역의 건축물은 주로 볕에 말리거나 불에 구운 흙벽돌을 사용하였으며 지붕은 둥근 돔*으로 덮는 것이 일반적이다. 벽면은 스투코*를 발라 채색한 문양들로 장식하였다.
사산조 조각*의 대부분은 마애부조(磨崖浮彫)로서 왕의 전승(戰勝) 장면이나 서임식(敍任式) 장면을 바위면에 새겨 놓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피루자바드의 〈아르타바누스Artabanus 5세에게 승리한 아르다시르 1세〉와 〈아르다시르 1세의 서임식〉, 낙시 루스탐Naqsh-i Rustam의 〈말을 탄 아르다시르 1세의 서임식〉과 〈나르샤Narsah 왕의 서임식〉, 비샤푸르의 〈샤푸르 1세의 승리〉와 〈샤푸르 1세의 서임식〉, 타크 이 부스탄Taq-i-Bustan의 마애부조 등이 있다.
사산조 이란에서는 금속, 유리, 염직 등의 공예 미술이 매우 발달했다. 왕의 사냥 장면을 타출 기법*으로 장식한 은제 접시류는 매우 유명하다. 사산조 이란의 미술은 비잔틴* 제국과 메소포타미아 지역 및 중앙아시아* 지역 미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사신 四神 si-shen(중)
중국 고대의 신(神)으로서,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를 가리킨다. 약 기원전 5세기의 문헌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이 상징적인 동물신은 전국(戰國)시대에 오행(五行)사상의 유행과 함께 방위와 색깔 등의 개념과 결합되어 체계화된 것으로 보인다. 사방의 별자리 형태와 대비시켜 동쪽에는 청룡을, 서쪽에는 백호를, 남쪽에는 주작을, 북쪽에는 뱀이 거북을 감고 있는 현무를 배치시켰고 사방의 방위신으로서 군사부대의 깃발, 포진에도 응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에도 적용되었다. 사신개념은 한대(漢代)와 남북조(南北朝)시대를 통해 풍수지리설과 신선사상 등의 조류와 결부되어 유행했다. 주로 무덤과 석관(石棺), 석비(石碑), 화상석*(畵像石), 와전*(瓦塼), 동경*(銅鏡) 등 방위의 의미를 지닌 특정공간에 사방의 수호와 벽사(辟邪)를 목적으로 장식되었다.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중국문화가 전래되면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부터 무덤의 수호신으로 자주 등장했다. 대표적인 예로 무용총, 약수리고분, 호남리사신총, 강서대•중묘, 진파리 1호분 등이며 이러한 표현은 백제의 공주 송산리 고분과 부여 능산리 고분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실주의 寫實主義
Realism(영) Réalisme(프)
현실을 존중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려는 예술 제작의 태도 또는 방법. 묘사하려는 대상을 양식화, 이상화, 추상화, 왜곡하는 방법과 대립하여 대상의 세부 특징까지 정확히 재현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주의의 본래 의미는 단순히 자연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대로의 일상 생활을 주제로 삼는 것을 뜻한다. 이에 반해 자연주의*는 단지 외형을 충실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좁은 의미로는 근대 시민사회의 성립에 따라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를 대신하여 1840년대 쿠르베Gustave Courbet(1819~1877), 도미에Honoré Daumier(1808~1879) 등에 의해 일어나 1850년대에 절정에 달한 프랑스의 미술운동을 말한다. 사실주의 미술은 사실주의 문학과 더불어 19세기 중엽에 프랑스 예술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사실주의의 주창자들은 아카데미*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인위성을 거부하고 예술 작품이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동시대 의식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따라서 역사나 알레고리*, 미적 대상* 등 전통적인 주제를 탈피하고 그때까지 무시당했던 중하층 서민들의 생활상, 평범한 일반 시민들의 모습과 가치관 등 동세대의 삶과 사회의 면모를 재현하는 작업에 진지하게 몰두하였다.
사실주의 미학을 최초로 선언한 화가인 쿠르베는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천사를 그릴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자기 자신이 직접 체험한 당대의 모습만을 꾸밈이나 미화하지 않고 정직하게 그리겠다는 예술적 의지를 천명하였다. 그는 1855년 만국박람회에 자신의 작품이 거부당하자 가설천막에다 ‘사실주의, 구스타브 쿠르베’라는 이름을 내걸어 개인 전시회를 열고, 그 서문에서 “자기가 속하는 시대의 풍속, 관념, 현실을 본대로 그린다”고 밝혔다. 쿠르베와 함께 열렬한 민주주의자였던 도미에는 파리의 빈민가와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빈민층, 악덕 변호사, 부패한 정치가 등을 주제로 프랑스 사회의 부도덕성을 풍자하였다. 한편 19세기 미국에서도 사실주의 미술이 나타났는데, 호머Winslow Homer(1836~1910)나 이킨스Thomas Eakins(1884~1916)는 당시 미국적 삶을 솔직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재현하였다.
추상에 경도되었던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은 사실주의를 배격하였지만, 대공황기에는 사회적 사실주의* 미술운동이 등장하였고 195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팝 아트*와 신사실주의*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심리적인 상황에 의거하여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묘사한 피슬Eric Fischl의 작품같은 경우는 사실주의를 동시대적인 경험을 조명하고 논평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긴 19세기 사실주의의 관점을 연상시킨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나타난 극사실주의*는 기계적 복제*의 응용이나 세부의 클로즈 업 등을 이용하여 대상을 실물과 착각을 일으킬만큼 완벽하게 재현함으로써 현대의 복제 문화를 반영하였다. 이밖에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운동으로는 20세기 구소련에서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창도 아래 전개된 사회주의 사실주의*가 있으나, 실제로는 엄격한 의미에서 사실주의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는 용감하고 강인한 노동자와 기술자의 모범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대개 대상을 자연주의적으로 이상화하였기 때문이다.
사실주의 선언 寫實主義宣言
Realistic Manifesto(영)
러시아 구축주의*자인 가보Naum Gabo(1890~1977)와 펩스너Antoine Pevsner(1886~1962),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이 1970년 8월 5일 모스크바에서 발표한 선언문. 1917년에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 이후 구축주의 미술가들은 보다 개인적인 미술을 추구하려는 작가들과 대중을 위한 공익적 설계를 내놓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이견으로 두 파로 갈라졌다. 즉 타틀린Vladimir Tatlin(1885~1953)이나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1891~1956)가 점점 예술이 특수하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혁명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가보와 펩스너는 화가로서의 독자성과 자신의 자유로운 실험에 따르는 화가의 권리를 존속시키기 위해서 투쟁하였다. 이러한 입장들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사실주의 선언>의 선포이다. 가보와 펩스너가 서명한 선언의 초안은 사실 가보에 의해 작성되었으므로, 그 선언문에 포함된 사상의 책임은 주로 가보가 지고 있었다.
사실주의 선언문은 ‘인간 역사의 장에서 아직 펼쳐지지 않은 시대’에 적절한, 예술에 있어서 새롭고 위대한 양식을 열정적으로 기원하고 있었다. 그 새로운 프로그램의 본질은 ‘삶이 자리잡은 그 위에 예술이 구축되어져야만 하는 유일한 형식’으로서의 공간과 시간의 재탄생이었다. 서술적인 색채와 선, 공간, 양괴는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즉 모든 요소들은 그들 자신의 실재성을 갖게 되었고 시간과 운동이 그들의 작업에서 기본적인 것이 되었다. 이 선언문은 몇 해에 걸친 러시아 추상미술의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고양되었던 사상이 그 정점에 도달한 것이었다. 비록 가보는 선언문을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 당시 자신의 그룹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에 대한 하나의 요약으로서 기술하였지만, 그것은 20세기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의 하나가 되었다. 또한 당시 부상하고 있었던 추상 화가와 조각가들이 입체주의*의 시작 이후로 분투해 왔던 문제들과 논쟁들에 대한 많은 부분을 명쾌하게 요약한 것이었다.
→ ‘구축주의’ 참조
사왕오운 四王吳惲
청초(淸初)의 산수화가 왕시민王時敏(우앙 스민, 1592~1680), 왕감王鑑(우앙 지엔, 1598~1677), 왕휘王絮(우앙 후에이, 1632~1717), 왕원기王原祁(우앙 위앤치, 1642~1715), 오역吳歷(우 리), 운수평惲壽平(윈 서우핑) 등 여섯 사람에 대한 총칭. 그들은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基昌(똥 치츠앙, 1555~1636) 후에 명성을 얻고 화단을 이끌면서 당시의 양식을 좌우했다.
사운드 아트 Sound Art(영)
시각 예술가들에 의해 제작되는 주로 소리로 구성되는 미술 작품. 시각이 아닌 청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예술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사운드 아트는 시각미술을 위한 장소 – 화랑, 미술관, 야외환경, 공공미술*과 퍼포먼스* 현장 등에서 전시되거나 카세트테이프 형식의 잡지로 발표된다. 시각미술의 영역에서 소리의 사용은 루솔로Luigi Russolo(1885~1947)가 1913년 미래주의* 선언문인 <소음의 미술The Art of Noise>에서 특이한 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통해 청중들에게 거리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부터 비롯되었다.
한편 미술과 음악이 결합된 형식인 사운드 아트에 개념미술*적인 요소가 나타나게 된 계기는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의 레디메이드* 작품 <비밀(숨겨진 소음과 함께)A Bruit Secret(With Hidden Noise)>(1916)에서 나사가 떨어진 것이 시초였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케이지John Cage는 뒤샹의 실험 정신을 계승하여 주위 환경의 소리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무음곡(無音曲)을 발표했다. 그의 작업은 음악, 시각미술 그리고 무대미술*의 전형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해프닝*과 플럭서스*의 이벤트에서도 소리가 이용되거나 음악이 연주되는 경우가 많다. 앤더슨Laurie Anderson은 연극적인 퍼포먼스에 팝 음악을 삽입하고, 에노Brion Eno는 섬세한 음질의 소리환경을 창조한다.
또한 몇몇 시각 미술가들은 보통의 무언의 미술작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소리를 사용해왔다. 예를 들어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1925~ )는 라디오를 그의 컴바인 페인팅* 작품인 <방송Broadcast>에 도입했으며, 모리스Robert Morris(1931~ )는 <소리 상자>(1961) 안에 3시간 분량의 녹음테이프를 넣어 미술 작품을 생산하는 과정의 소리를 녹음했다. 1960년대말 개념미술로부터 시작한 소리 조각은 다른 많은 개념미술 형태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에 가장 활발히 제작되었다. 노만Bruce Nauman(1941~ )과 질 스콧Jill Scott을 포함한 개념미술가들은 사운드 아트 작품을 제작하는 동시에 설치* 미술이나 비디오 아트* 등 다른 매체를 다루는 작업을 병행하였고, 홀리스Doug Hollis 같은 작가는 바람 등의 자연현상에 의해 음을 내는 야외 조각을 제작한다.
사의 寫意
①외형보다는 내재적인 정신이나 의취(意趣)를 표현하는 것. 동양화에 있어서 사실(寫實)을 의미하는 ‘형사(形似)’와 대조되는 용어이다. 송대(宋代)에 수묵화*가 극도로 발전하게 되면서 정립된 개념으로, 물상(物象)의 이치와 섭리를 터득하고 흉중구학*의 경지를 표출해 내는 것을 이른다. 송대의 문인 소식蘇軾(쑤 스, 1036~1101)은 “형사로만 그림을 논하면 식견이 아이들과 다름없다”고 말함으로써 형사보다 사의를 중요시했다. 즉 문인화가들은 회화 창작시 회화상에 사의가 내포되는 것을 매우 중요시했는데, 이러한 송대의 문인화*론(文人畵論) 전개 과정 속에서 사의는 중요한 개념으로 발전해 왔다. 한국의 문인화가들도 중국 문인화론의 영향 속에서 이러한 경지를 획득하는 것을 회화창작의 목표로 하였다.
②동양회화 기법 용어. 속칭 조필(粗筆)이라 하며 공필*과 대비되는 말이다. 조방한 필묵을 사용하여 간략하게 대상의 형상과 신운(神韻)을 그리는 화법을 이른다. ‘사(寫)’는 대상의 형체를 표출해 내는 것이고, ‘의(意)’는 객관대상의 정신과 본질을 담아내는 것이다. 나아가 작자의 문화소양과 정신기질을 표현해 내는 것이기도 하다.
사의는 인물이나 산수, 화조화*를 그릴 때 사용된다. 남송南宋의 양해梁楷(량 카이), 법상法常(화 츠앙)과 명대(明代)의 진순陳淳(츠언 쉰), 서위徐渭(쉬 웨이), 청대(淸代)의 주답朱耷(주 따) 등이 이 기법에 뛰어났다. 송대(宋代)의 한졸韓拙(한 주어)은 “붓을 놀리는 데는 쉽고 간단하게 하면서도 뜻을 완전히 표출해내는 것이 있고, 교묘하고 치밀하여 자세히 묘사하는 것이 있다”고 말했는데 전자가 바로 사의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이버네틱 아트 Cybernetic Art(영)
기술공학적인 조각 혹은 관람자의 접근이나 소음 등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예술작품으로 키네틱 아트*의 발전된 형태이다. 라틴어로 ‘키잡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사이버네틱스는 인공두뇌학으로 번역되며, 제2차세계대전 직후 미국의 수학자인 비네Robert Wiene에 의해 제창되었다. 인공두뇌학은 생물과 기계의 상호유추관계에 있어서 통신, 제어, 계산 등의 정보기술과 이론을 총합한 새로운 형태의 과학이다. 사이버네틱 아트는 이러한 인공두뇌학에 기초하는 과학 기술에 의해 예술의 환경화와 사회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으로 195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쇠페르Nicolas Schöffer(1912~ )같은 작가들은 움직임의 원리를 과학 기술이나 기계의 동작에 대응하는 것이 아닌, 우주나 자연의 법칙에 조응시키는 조형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1954년 쇠페르는 환경의 변화에 의해 작동하는 <공간 역학 사이버네틱스 음향탑>을 제작한데 이어, 1961년에는 66개의 회전 거울과 120개의 다색 투광기와 제어장치를 지닌 탑을 벨기에의 리에주에 설치하였다.
이처럼 외부 환경으로부터의 자극, 즉 소리, 움직임, 빛, 바람, 온도 등의 정보를 각종 감응장치에 의해 감지하고 그 변화에 따라 작동하여 움직이는 미술 작품을 일컫는 사이버네틱 아트는 오늘날에는 인간의 뇌파에 음향장치를 연결한 사이버네틱 음악과 퍼포먼스*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사이버네틱 아트 작품의 작동의 제어에는 일반적으로 컴퓨터가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조형 작품들은 움직임의 원리를 과학기술과 기계의 동작에 대응시키기보다 우주와 자연의 법칙에 순응시키고자 하며, 작품 자체의 의지로 움직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